0. 냉면 값이 비싸냐를 가지고 논하다가 갑자기 회의감이 찾아오면서, 정작 박사논문은 읽어주는 사람도 없이 방치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어 지난 2년반의 세월에 약간 미안해졌다. 2년간 10번도 안 먹은 냉면 이야기를 쓰는 와중에 과연 2년간 엄청난 시간을 쏟아부은 내 논문에 대해서 페친들은 얼마나 알고 계신단 말인가?(만원 넘는 냉면에 국한한다) 박사논문의 '박'이라는 말만 들어도 이건 어려운 것이기 때문에 나는 이해할 수 없을 거야, 라고 생각하실 많은 분들을 위해 아주 간단히 엑기스만 정리해두도록 하겠다. 게다가 무려 논문을 영어로 썼기 때문에 읽는 분들께도 좀 죄송하기도 하다(한국어 사용자, 영어 사용자 모두에게 미안함). 최대한 짧고 굵게 써보겠다.
1. 논문제목은 이중적 의미를 담고 있다. 원래 PPP는 민관협력 쯤으로 번역하는데, 내 논문에서는 '민간투자사업'을 의미한다. 민영화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그 중에서도 민간의 자본을 투자받는다는 의미의 민영화는 민간투자사업이라고 지칭한다. 우리나라도 도로법, 항만법 등에서 민간투자사업이 예전에도 어느 정도 가능했지만, 94년 민간투자법이 통과되면서 인천공항고속도로, 천안논산, 대구부산, 인천대교 등의 시설물들이 민간투자사업으로 건설되었다. 이 사업들은 인프라(infrastructure의 약자, 주로 SOC라고 표현하기도 함) 주로 민영화라는 측면에서 많이 다루어지지만, 이 논문에서는 해마다 일정한 수익을 창출하는 금융상품화라는 측면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즉, 인프라 생산의 주체가 공공에서 민간으로 이전했다는 점과 함께, 공공투자의 방식이 국고에서 자본투자로 바뀐다는 점도 중요하다. 이것이 이 논문의 전제이다.
2. 작년 한겨레 수요추정 기사의 시리즈와 덴마크 학자 벤트 플뤼비아(Flyvbjerg)의 논의는 인프라 수요의 과대추정에 대해서 다뤘다. 특히 전자는 한국의 여러 사업들에 주목해서 수요추정이 엉터리라는 점을 대대적으로 폭로했고, 플뤼비아는 2002년부터 전 세계 인프라를 대상으로 비슷한 연구를 수행해왔다. 요컨대 계획가들은 수요를 과대추정하고, 비용을 과소추정해서 공공인프라 건설로부터 부당한 이득을 챙긴다는 것이다. 내 의문은 "재정사업과 민간투자사업은 금융방식이 완전히 다르다. 그렇다면 민간투자사업의 수요추정 오류는 누구의 탓인가? 정부, 민간, 아니면 국책연구기관들?" 나는 민간투자사업 방식의 경우에 국한하여, 수요추정의 오류가 어디에서부터 비롯되었는지를 보고 싶었다. 최초의 민간투자사업인 '인천공항고속도로'를 대상으로 해서 심층취재를 한 결과 다음과 같은 결과를 얻었다. i) 최초 국가가 한 94년의 수요추정은 가장 비정상적으로 과다하게 교통수요을 예측했다. ii) 최초 협약(95)에는 수요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포함되지 않았고, 2000년 수요예측은 94년 수요추정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이 때 정부와 민간사업자는 오히려 과대추정된 수요를 어느 정도 현실에 맞게 조정하였다. iii)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요는 엄청나게 과대추정되어 있었고, MRG로 인해 많은 추가 재정지출이 이어졌다. iv) 정부는 MRG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 지속적인 재협상을 통해서 예상 현금흐름 값을 조정했다. 간단히 말하면, 흔히 민간투자사업에서 수요추정의 원인은 주로 민간사업자의 간교한 꾀에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오히려 이 경우에는 국가의 수요추정 오류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3. 대규모 인프라 사업은 평균 5년 정도 시공을 하고 30년 정도 민간사업자(SPC, or concessionaire)가 운영하여 수익을 획득한 후 국가에 운영권을 반환한다. 이와 같은 사업방식을 BTO(Build-Transfer-Operate)라고 한다. 지금까지 언급한, 인천공항고속도로, 천안논산, 대구부산, 서울춘천, 인천대교, 인천공항철도 모두 같은 원리로 만들어졌다. 내가 최초로 가진 의문은 다음과 같았다. 국가가 수요추정의 오류로 굉장히 많은 MRG를 민간사업자에게 지급하고 있다면, 추정컨대 민간사업자에게 엄청나게 남는 장사이므로 이익이 많이 발생할 것이다. 그러나 이종태 시사인 기자의 맥쿼리코리아 관련 기사가 보여주듯이, 민간사업자의 회사(SPC)는 적자다(논문 자세히 보면 이종태 기자의 기사를 직접 번역해서(한글-영어) 인용한 부분이 있다). 그것도 자기자본까지 없어지는 매우 심각한 적자상태이다. 그렇다면 인프라펀드(민간투자사업에 투자한 재무적 투자자 중에서도 자기자본에 투자한 투자자)는 어떻게 인프라사업을 통해서 이익을 가져가는 것일까? 이것을 밝히는 것이 마지막 5장의 내용이 되시겠다. 아주 간단히 요약하자면, SPC는 인프라펀드가 수익을 올리기 위해서 만들어놓은 유령회사(paper company, SPC, 혹은 명목회사: 일반적인 금융기법으로 유령회사라 비난해서는 안된다)에 불과하다. 운영기간이 시작되면 SPC는 공사중에 진 과도한 빚으로 자본이 잠식될 정도로 재무상태가 나쁘다(당연지사). 이 때 수익을 조기에 실현하고 싶어하는 시공사(예를 들어, 현대건설, 삼성물산, GS건설 등..)는 빨리 주식을 팔고 싶어하고, 인프라펀드는 이 주식을 사서 새로운 방식으로 수익을 내고 싶어한다. 인프라펀드는 주식을 매입하여 유상감자(자본을 줄인다)를 실시하여 자기자본비율을 낮춘다(이 과정은 리파이낸싱이라 한다. 보통 이 모든 일이 한꺼번에 이루어진다). 실제 SPC의 자산 중에서 인프라 펀드가 가진 자기자본 비중은 10% 내외이다. 대신 인프라펀드는 자신의 자회사 격인 SPC에 돈을 후순위채로 빌려주고, 그 이자를 수익으로 가져간다(이 지점이 바로 이종태 기자가 비판하는 지점이다). 후순위채 이자는 통상적으로 9%에서 심한 경우에는 70%에 이르기도 한다. 요컨대, SPC는 수익의 대부분을 후순위채 이자로 인프라펀드(주식투자자)에게 지불하기 때문에 상당히 많은 매출을 기록함에도 불구하고(MRG 때문에), 자본이 잠식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국가는 이 과정을 모두 알고 있지만, 리파이낸싱을 제재하기보다는 권장한다. 왜? 답은 MRG에 있다. 애초에 터무니 없이 높게 합의된 MRG 비용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는 인프라펀드가 SPC를 통해서 수익을 올리는 것을 눈감아주어야 재협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서울외곽순환도로 북부구간(일산-퇴계원)은 원래 개통당시 요금이 5900원이었으나, 자금재조달 이익공유 협상을 통해 4800원으로 낮출 수 있었다. 그래도 여전히 비싸다.
4. 왜 금융지리학인가? 이 논문은 자본주의적으로 생산된 공간을 '공간'이라고 정의했다. 따라서 공간생산이란 자본주의적 방식에 의하여 공간(인프라)을 생산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이 과정은 원래 르페브르에서 기원한 것으로 하비가 78년 논문, '자본주의 하의 도시과정'(Urban Process under Capitalism)이라는 논문으로 정리한 바 있다. 여기에서 하비는 공간생산 과정에서 국가와 민간투자자 간의 협업, 혹은 경쟁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하비의 논의는 재무회계 정보를 기반으로 해야만, 현대 자본주의 체제에 의미있는 충격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비는 자본투자가 물리적 경관(physical landscape)를 창출한다는 식으로 정리했는데, 나는 그 과정에서 인프라펀드가 어떤 자본투자의 논리를 바탕으로 공공부문의 인프라를 투자상품으로 바뀌는지를 경험적으로 연구한 것이다.
5. 아무리 짧고 쉽게 쓰려고 해도, 쓰다보면 어렵고 길어진다. 논문의 본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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