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과 꿈 이야기

나를 해방시키지 않는 여행 여행가서 가장 즐거웠던 순간 중 하나는 파키스탄 훈자에서 매일 같이 밤 새도록 수다 떨던 일. 한국인 여섯명이 모여 온갖 주제에 대해서, 온갖 사람에 대해서, 온갖 노래와 미술, 영화, 책, 음악에 대해서 이야기하던 그 때 (하루끼와 한비야는 여행자들의 단골 노가리 메뉴). 모르는 사람과도 밤새 얘기하다보면 그 사람의 어린 시절부터 가치관, 트라우마까지 꽤 진지한 내면 이야기들을 듣게 된다. 멤버가 바뀌면 또 그 사람의 이야기가 왜곡되고 비틀어지고 전달되면서 새로운 내러티브가 진행되고 급기야 오해와 질투, 시기로 갈라서기도 한다. 누군가는 누군가의 오해를 풀기위해 몇 백 킬로미터의 일정을 돌리기도 했다. 한국에 와서도 그 사람들 꽤 만났다. 그런데 한국에서 우리는 돌아가야 할 집이 있었고, 공짜로 무한대.. 더보기
모든 고민을 해결하는 법 요즘은 고민이 생기면 도서관에 달려간다. 논문에 집중하지 못할 때, 도서관에 가서 보니 황농문 교수의 일련의 '몰입'에 관한 글을 읽게 되었다. 꼭 그 책을 찾으러 간 것은 아니었지만, 어떤 고민이 있는 상태에서 도서관에서 방황하다보면 꼭 손에 잡히는 책들이 있다. 맞다. 나도 간헐적으로 느꼈던 그 특수한 두뇌상태. 계속 아이디어가 생각나고, 밤에 잘 때도 공부하고 있는 것 같은 그 느낌. 어쨌든 작년과 올해 '몰입'을 만난 것은 큰 행운이었다. 덕분에 충분히 노력하고 있는 상태로 뇌를 바꿔놓기 위해서 노력할 수 있었다. 논술선생을 할 때도 그랬고, 예전에 소설 쓸 때도 나는 글에 대한 글을 거의 읽지 않는다. 글 잘 쓰는 방법이라고 작가들이 써 놓은 것들이 나에게 도움 될 리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더보기
사이비 대중문화론 박범신, "살려고 쓴다." 쓰지 않으면 자기가 자기를 파괴한다. 그는 꽤 예민하다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진행자는 그런 점을 예리하게 포착한다. 그의 삶에서 어쩌면 가장 말하기 불편한 내용을 담담하게, 그러나 칼날처럼 파고든다. 진행자는 그의 자살기도에 대해서, 난데없는 잠적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잠깐 생각해보았다. 나도 문학에 투자한 시간이 적지 않은데, 문학은 나에게 무엇을 해줬을까? 문학은 나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다. 나는 문학에 매료되었을뿐, 문학으로부터 치유받지도 못했고, 돈도 벌지 못했다. 김영하가 나에게 남긴 한 마디. "문학과 함께 하는 삶이라면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그 말을 잠시나마 믿는 사이, 점점 문학에 의존하게 되었다. 역시,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이런.. 더보기
철학과 진로에 관한 간단한 소고 여기저기 손댄 모든 분야에서 대체로 무난하게 헤쳐나가기는 했지만, 한 분야에서도 이렇다할 성공, 아니 진척을 본 적이 없다. 써놓고 보면, 굉장히 오만하게 들릴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겨우 서른 둘, 아직 뭔가가 생기기에는 어린 나이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차곡차곡 쌓아가는 지금 농사가 언젠가 수확으로 돌아올 날도 있을 것이다. 반짝 하는 인기나 평판은 부질없다고 애써 생각하려 한다. 안다. 그러나, 어딘가 허전하다. 내 나이 쯤 되면 사회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이들이 하나씩 보편을 뚫고 올라온다. 개중에는 연예인도 있고, 학자도 있으며, 기자, 소설가, 사장도 있다. 조만간, 아니 언젠가 한번은 내 주관이 보편을 뚫고 올라오는 날이 있겠지라고 여기기에는 내 성격이 너무 급하다. 철 없던 시절, 비트겐슈타인.. 더보기
이별 길 거리를 걸을 때, 갑작스레 옛 기억이 떠올라서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대부분 위험한 기억이다. 다시 떠올리는 게 불순하고, 누군가에게 미안하고 그런 종류의 기억. 다들 하나씩은 가지고 있겠지. 그런 기억일수록 더 달콤하다. 돌아갈 수 없다는 게 묘한 로망을 만들어준다. 손대면 그 로망이 깨져버릴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끊임없이 갈망한다. 담배를 입에 댄다면, 어떤 느낌일까? 다시 메케하고, 입안이 바싹바싹 마르고, 어쩌다 가슴이 조이듯 아파오고, 자기 전까지 물고 자겠지. 나는 담배가 아무리 몸에 나빠도, 몸에 나쁘다는 이유로 끊을 생각은 없었다. 일단 우리 할아버지도 일평생 담배를 태우시다가 60이 다 되어서 겨우 끊으셨는데, 여든이 넘도록 건강하게 살다 가셨다. 아버지나 작은아버지 등 아직 담배를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