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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꾼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단상

마르크스주의에 관한 수많은 비판 중에서 칼 포퍼의 비판이 가장 유명할 것이다. 마르크스주의, 특히 변증법은 반증불가능하기 때문에 과학의 영역이 될 수 없다는 것. 이 반증주의는 문제가 많은데, 그렇다면 우리가 과학이라고 알고 있는 모든 것들은 반증될 수 있는 것이냐 하는 문제가 남는다. 혹은 지금 우리에게 반증가능하지 않은 명제라도 나중에 반증가능해질 수 있는 문제도 있을 수 있다.


(이 문제는 여러번 포스팅 했다.) 


그런데, 나는 포퍼의 비판보다는 엉뚱하게도 러셀의 비판이 더 예리하다고 생각한다. 러셀은 마르크스가 과학자인 척을 했지만, 정작 자연과학에 대해서 놀랍게 무지하며, 엉성한 전제를 사용함으로써 '과학'을 농락했다고 비판했다. 예를 들면, 물이 100도가 되면 끓는 현상을 두고, 냉기와 열기의 변증법적 조합이 양질전화를 일으켜 수증기가 된다는 헛소리가 변증법을 만나면 과학이 된다는 것이다(과학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최근 모 선생님이 헤겔의 변증법을 '개념의 균형'이라는 키워드로 설명했다. 들을 때는 참 쌈빡한 표현이라고 느꼈는데, 곱씹어볼 수록 이상한 말이다. 개념에 균형이 어디에 있는가? 개념은 사물, 혹은 추상화된 사고를 가리기 위해서 사용하는 도구일 뿐, 애초에 균형과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존 스튜어트 밀의 관념이론, 도넬란의 지칭이론, 오스틴의 화용론, 러셀의 한정서술구 이론 어디에도 개념에 균형이 있다는 황당한 주장은 존재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정직이라는 단어가 '정직한 상태, 성질'을 가리킨다고 해서 '부정직'이라는 개념과 결합해 '적당한 정직'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낸다고 누가 나에게 설명한다면, 나는 그를 얼간이라고 부를지 모른다. 이 논증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이론은 힘없이 무너진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소위 '개념의 균형'이 무슨 대단한 법칙인 마냥, 그것에 적합하지 않는 논제를 반박한다. 김 모씨는 자본주의 축적논리와 영토논리는 정당한 개념쌍이 아니라고 비판했는데, 비판을 받은 하비의 '신자유주의론'도 문제가 많기는 하지만, 그의 비판은 더 어이가 없었다. 산업자본주의 시대에나 적합할 법한 자본가와 노동자라는 이분법은 용인하면서, 그보다 더 모호한 착취자와 피착취자라는 관념도 용인하면서, 축적논리와 영토논리는 개념쌍으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은 스스로 교조주의라고 선언하는 것과 다름 없다고 생각한다. 그의 주장은 이론 보다는 정작 자기 자신에 대해서 많은 것을 설명한다. 자기는 하비의 논의를 이해할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자를 비판해서 무엇하랴마는  

마르크수주의가 과학이라는 말은 아직 내 머리로는 이해되지 않는다. 


사물의 이면을 본다는 독일 관념론자들의 생각은

그 나름대로의 함의는 있지만, 

과학은 아닌 것 같다.  


이렇게 말하면, 또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를 들고 와서 과학도 그냥 패러다임일 뿐이라는 반론이 쏟아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