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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학자/역사문화

『역사의 종말』에 대한 연역적, 귀납적 반론

대학 4학년때 썼던 서평, 지금은 이렇게 용감하게 쓰지 못한다.


역사의 종말(한마음신서 6)

저자
프랜시스 후쿠야마 지음
출판사
한마음사 | 1992-11-15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자유민주주의의 주요 경쟁체제인 공산주의가 붕괴된 오늘의 시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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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


그 많던 헤겔주의자는 다 어디로 갔을까? 1980년대 한국의 대학은 그야말로 헤겔 일색이었다고 한다. 당시 학생운동의 주된 사상적 배경이 맑시즘이었기 때문이다. 맑스의 이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헤겔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맑스는 헤겔의 제자였을 뿐만 아니라 아이디어의 상당부분을 헤겔에서 차용했기 때문이다. 맑스가 헤겔을 얼마나 존경했는지 설명해주는 일화가 있다. 헤겔이 죽은 다음 수많은 사람이 헤겔을 비판했는데, 그들을 두고 맑스는 “헤겔을 죽은 개 취급 하지 말라”고 말했다. 적어도 맑스는 헤겔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2000년대를 훌쩍 넘겨버린 지금 한국에서 헤겔주의자를 찾기란 쉽지 않다. 아마 언론에서 어떤 정치인을 두고 “헤겔주의자”라고 규정한다면, 그 정치인은 해당 언론에게 명예훼손 소송을 걸 지도 모를 일이다. 80년대 한국의 대학사회를 풍미했던 헤겔의 사상이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된 것일까? 이는 90년대 공산주의 국가의 연속적인 몰락과 무관하지 않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것을 시작으로 동서의 냉전 균형은 급격하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고르바쵸프의 등장으로 소비에트 연방은 공식적으로 해체되고, 중앙아시아 및 동구권 국가들이 독립을 하면서 사실상 공산주의 실험은 막을 내렸다. 


헤겔에서 비롯된 맑시즘을 신봉하던 사람들에게 이러한 사회주의의 몰락은 크나큰 충격이었다. 2006년 현재 공식적으로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는 북한과 쿠바 정도이다. 이 같은 사회주의 실험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헤겔의 역사관을 그대로 가지고 있기는 어려운 일이다. 이상사회 건설이라는 꿈을 가졌던 많은 사람들은 공산주의 몰락과 함께 자취를 감추었다.


헤겔주의자들이 자취를 감춘 또 다른 이유는 철학적 지형의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 철학을 크게 경험주의와 이성주의로 나눈다면, 헤겔의 철학은 이성주의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헤겔의 철학을 “플라톤 관념론의 완성”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 때문이다. 현대 철학에서는 “이성” 자체에 대해서 회의하는 포스트 모더니즘이 인기를 끌고 있다. 한국에서 90년대에 미셀 푸코의 붐이 일었던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야기할 수 있다. 일반화의 위험을 무릎 쓰고 말하건대, 포스트 모더니즘의 특징은 “가벼움”이다. 헤겔이나 맑스의 철학과 같은 무거운 주제들은 더 이상 사람들의 흥미를 자극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프랜시스 후쿠야마(Fransis Fukuyama - 이하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말(End of History and the Last Man』


(1992)은 그런 의미에서 거대담론의 마지막 일광이라고 할 수 있겠다. 후쿠야마는 이 책에서 수많은 국가의 실례를 소개하면서 “역사는 끝났다”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은 일관되고 명확해서, 이해하는 데에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이 글은 후쿠야마의 주장을 요약한 다음, 그의 주장은 연역적, 귀납적으로 검증해보고자 한다. 『역사의 종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헤겔과 니체 등 심오한 사상가들의 철학을 살펴보아야 한다. 이들의 철학적 논의를 본격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본인의 능력 밖에 있는 일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헤겔에 대한 버트란트 러셀의 견해를 참고하여 상식적 수준에서 철학 문제를 다루기로 하겠다. 




2. 『역사의 종말』의 요약


자유민주주의 ‘이념’은 더 이상 개선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완벽한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의 친구: 이 세상이 전쟁이나 기아 등으로 점철되어 있지만 원시시대보다 훨씬 살기 좋은 사회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네.

비트겐슈타인: 당신은 그렇게 생각하겠지, 그런데 원시인은?


어쩌다가 후쿠야마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역사의 종착역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을까? 후쿠야마는 “인정을 위한 투쟁”이라는 헤겔의 논의로부터 이야기의 실마리를 풀어낸다. 헤겔에 의하면 태초의 인간은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싸웠다고 한다. 그들이 목숨을 걸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는 “진정으로” 자신을 인정받기 위해서이다. 이런 헤겔의 주장은 홉스의 자연상태와는 다른 맥락으로 이해해야 한다. 후쿠야마는 이 점을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 의미에 대한 당시 헤겔의 이러한 생각은, 영국이나 미국과 같은 나라에 있어서 자윶의의 이론적 토대였던 앵글로 색슨적인 이해와는 현저하게 다르다 …(생략)… 홉스나 록크 그리고 미국 건국의 아버지인 제퍼슨이나 메디슨 등에 의하면 권리라는 것은 대게 사람이 자신을 풍요롭게 하고 또한 자기 영혼의 욕망을 만족시킬 수 있는 개인적 공간을 보호하는 수단으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홉스는 자연상태를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라는 인상적인 말로 표현했다. 홉스에게 있어서 이들이 싸우는 이유는 “생존 권리”를 찾기 위해서이다. 말하자면 투쟁의 원인은 상당부분 경제적인 문제에 기인하는 것이다. 반면 헤겔은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욕망을 “인정받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인정받기 위해서 싸우던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은 결국 생명에 위협을 느껴 비굴하게 굴복할 수 밖에 없다고 헤겔은 설명한다. 그 중에 한 사람은 주인이 되고, 한 사람은 노예가 되는 것이다. 이로서 싸움은 끝났지만, 주인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다. 왜냐하면 노예는 끝까지 목숨을 걸고 싸우지 못한, 비겁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주인은 비굴한 노예로부터 오는 “인정” 밖에 받지 못한다. 게다가 주인은 아무 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자기 존재에 대한 확신을 잃어간다. 반면 노예는 노동을 함으로써 자신의 생각을 구체화시켜 나가는 창조적 인간이 되어간다. 결국 주인은 싸움에서 이겼지만, 노예에 의지해서 살아갈 수 밖에 없다

.

이를 두고 “주인과 노예”의 역설이라고 하는데, 헤겔은 과감하게도 미국의 독립혁명을 보면서 “주인과 노예”의 관계가 극복되었다고 생각했다. 후쿠야마는 이와 같은 헤겔의 견해를 그대로 받아들여서 자유민주주의가 역사의 최종적 단계임을 주장한다. 그는 숱한 나라의 예를 들어가면서 자유민주주의는 혁명이나 쿠데타로 일어나지 않고, 합의에 의해서 도출되었다면서 맑스가 틀렸음을 지적했다. 이로써 주인과 노예는 평등하고 보편적인 관계로 거듭나게 된다고 그는 설명한다. 국민국가는 국민 개개인의 존재를 인정하고, 국민 역시 투표 등을 통해서 국가의 일에 관여하는 아름다운 관계가 지금 우리의 눈 앞에 펼쳐지고 있다는 판단이다. 적어도 후쿠야마의 설명에 따르자면, 우리는 이상세계에 돌입한 것처럼 보인다. 후쿠야마의 사상을 받아들인다면 우리의 남은 과제는 지금의 “아름다운” 관계를 지속하고 발전시키는 것뿐이다.




3. 연역적 근거 비판 – 러셀의 헤겔론을 중심으로


헤겔의 저작은 철학에 관한 모든 저작 중에서 가장 난삽한 책이다.



『역사의 종말』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헤겔에 대해서 좀더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후쿠야마는 헤겔을 “위대한” 사상가라고 추켜 세울 뿐만 아니라, 자신의 논의가 헤겔에서 유래했다는 것을 공공연하게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프란시스 후쿠야마, p.8) 버트란트 러셀의 평가처럼 그의 글은 “난삽”해서 대중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구석이 있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러셀의 헤겔론(論)을 중심으로 논의를 풀어나가려고 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러셀은 헤겔의 “인정을 위한 투쟁”에 대해서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우리는 사상적인 지형에서 헤겔이 어느 위치에 있는지를 확인해 보는 정도로 만족해야 한다.


『서양의 지혜』에서 러셀은 수많은 철학자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뚜렷하게 밝히고 있는데, 플라톤과 헤겔을 묘사한 부분에 상당한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플라톤: 철학에 대한 플라톤의 영향은 아마 다른 어느 누구의 영향보다 클 것이다. 소크라테스와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의 후계자인고 아카데미아의 창설자이며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승인 참으로 철학 사상사의 중심인물이다.(러셀, p.89)

헤겔: 그가 논하고 있는 주제들의 성격 탓만이 아니라 저자의 서투른 서술방식 때문이기도 하다. 재치 있는 은유가 가끔 의미를 분명히 드러내기도 하지만, 그의 책이 지닌 전반적인 불명료성을 제거하기에는 충분하지 못하다.(러셀, p.369)


주지하다시피 러셀은 플라톤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철학자이다. 러셀의 한정서술구 이론(description theory)은 “단어의 의미는 특정한 서술구에서 비롯된다”는 주장인데, 이것은 플라톤의 이데아와 같은 추상적 개체가 단어 안에 이미 포함되어 있다는 뜻이다. 또 앞서 인용한 러셀의 견해를 보더라도 그가 플라톤을 호평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많은 학자들이 플라톤의 철학을 헤겔이 완성했다고 하는데 그는 헤겔에 대해서 왜 그토록 비판적인 것일까? 


러셀이 지적하듯이 “헤겔의 시도는 이 세계를 하나의 체계로 보려는 시도였다. 헤겔의 철학은 정신을 강조하기는 했으나 최소한 주관주의를 목표로 삼지는 않았다. 따라서 헤겔의 철학은 객관적 관념주의라고 부르는 게 온당하다.”


 역사는 결국 절대정신이 실현되는 방향으로 전진한다는 것이 헤겔의 주장인데, 이 주장은 많은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첫째, 만약에 역사가 한 방향으로 진전한다면 헤겔이 상정한 최초의 인간이 실제의 모습과 조금만 다르다 하더라도 우리는 역사의 방향을 엉뚱하게 이해할 수 밖에 없다. 둘째, 헤겔은 부분이 전체에 속한 것으로만 이해했는데, 이는 역사에 대한 결과론적 오류를 불러일으킨다. 셋째, 역사가 한 목적을 향해 달려나간다는 명제는 검증할 수 없다.


헤겔의 합목적적 역사관이 사람에 따라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는 점은 헤겔과 러셀의 차이만 보더라도 뚜렷하다. 두 철학자 모두 플라톤의 관념론에 강한 영향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러셀은 플라톤을 존경함과 동시에 헤겔을 통렬하게 비판하지 않는가? 결국 역사란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서 커다란 차이를 보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헤겔은 “프러시아가 곧 절대정신”이라면서 찬양했는데, 그 이유는 “이성의 명령”이라고 한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후쿠야마는 “한 가지 목적을 향해 역사가 달려간다”는 헤겔의 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여서, 그 종착점이 자유민주주의라고 주장했다. 가령 “세계는 민주주의의 발전을 향해 나아간다”는 주장에 대한 근거를 백 가지 댈 수 있다면, 그에 반대되는 예도 백 가지를 들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이라는 단일한 틀로 세상 전체를 이해하려는 헤겔의 무모한 시도는 후쿠야마에게서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4. 경험적 사례 비판 – 이슬람에 대한 후쿠야마의 생각을 중심으로


실제로 긴 안목에서 보면 오히려 이슬람 세계 쪽이 

자유주의 이념에 무릎을 꿇게 될 것으로 보인다.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말』에서 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를 언급하고 있다. 다양하고 풍부한 그의 예시 덕분에 우리는 후쿠야마의 주장을 보다 선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그의 관심사는 미국과 서유럽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와 아프리카 등의 지역까지 넓게 퍼져있다. 하지만 이 책이 집필되던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이슬람 문화에 대한 연구가 누적되지 않아서인지, 그는 유독 이슬람에 대해서 모호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는 이슬람을 “독자적 이데올로기”이며, 자유민주주의와는 다른 무엇으로 규정한다. 


10억에 가까운 인구-세계인구의 1/5-가 이슬람 문화에 속해 있지만, 그들의 그 이념의 수준에 있어서 자유민주주의와는 도저히 상대가 될 수가 없다.



저주에 가까운 그의 예측은 완전히 어긋났다. 후쿠야마의 언급대로 1992년의 이슬람 인구가 10억이었다면, 지금(2006년)에는 17억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세속화와 서구화를 동시에 추구하며 독특한 성장을 보여온 터키에서조차 이슬람 신도의 수는 전혀 줄지 않는다. 게다가 무슬림의 지리적 분포를 보면, 중앙아시아를 비롯해서 (일부)인도와 파키스탄, 서아시아, 일부 아프리카까지 굉장히 넓은 지역을 점유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게다가 터키의 노동력이 유럽으로 급격히 유입되면서, 유럽 내에서의 무슬림의 숫자도 무시할 수 없다. 

게다가, 후쿠야마는 엉뚱한 주장을 늘어놓는다.


과거 1세기반에 걸쳐서 자유주의는 열광적인 수많은 회교도를 끌어들인 것이다. 최근 이슬람 원리주의의 부활은 어떤 의미에서는 전통적인 이슬람 사회가 자유주의에 기초한 서구적 가치관의 커다란 위협을 인식한 것에 대한 결과인 것이다.



“나 오늘부터, 무슬림 안 하고 자유민주주의자 할래”라고 전향한 사람이 있기나 한 것일까? 만약 후쿠야마가 주장하는 자유민주주의가 17억 이슬람 인구를 포용할 수 없다면, 그 자유민주주의가 “역사의 완성”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게다가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 정권을 지지해 준 것은 다름아닌 –후쿠야마가 그토록 찬양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인-미국이라는 사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물론 9.11 테러 이후에 미국이 탈레반 정부를 무너뜨리기는 했지만.) 이런 비판을 의식했던 까닭인지, 그는 각주에 변명을 덧붙였다.


자유민주주의를 대신할 효과적인 선택의 여지는 없다는 나의 논문 「역사의 종말」이 시사하는 것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으로부터 분노에 찬 비판이 있었다. 그들은 이슬람 원리주의나 국가주의, 파시즘, 그 밖의 많은 가능성을 지적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자 중 누구 한 사람도 그러한 선택이 자유민주주의보다 우월하다고 믿지 않았다.



이 부분은 후쿠야마의 생각을 잘 보여준다. 그는 시간과 공간의 맥락에 “적합한” 체제가 있다는 것을 믿지 않았던 것이다. 그의 논의에서 “자유민주주의”로 여타의 정치체제보다 “우월”한 체제인 것이다. 그는 이슬람을 “자유민주주의”와 화합할 수 없는 정치체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그가 주장하는 자유민주주의가 무척 편협한 형태임을 보여준다. 자유민주주의는 프로테스탄티즘과 결혼할 수는 있어도, 이슬람과는 타협할 수 없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 이슬람 국가들이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후쿠야마가 언급하는 “이슬람 원리주의”는 소수파의 과격분자들이며 무슬림 내부에서도 그들은 공포의 대상이다. 대다수 무슬림은 오늘도 하루에 다섯 번씩 메카의 방향으로 절을 하는 경건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을 뿐이다. 후쿠야마의 글이 좀 더 설득력을 가지려면, 이슬람의 특성을 보다 세밀하게 분석한 상태에서 논의를 출발해야 한다. 모두가 반대하는 “이슬람 원리주의자”를 예로 들어 “자유민주주의가 더 우월하다”는 결론을 이끌어내는 것은 정말이지 해서는 안될 일이다. 


5. 결론


역사가 끝났다는 후쿠야마의 과격한 주장은 네오콘의 사상적인 지침이 되었다. 그 후로 그는 미국의 힘을 바탕으로 아랍 세계에 민주주의를 설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시가 감행했던 이라크 전쟁은 후쿠야마에게도 충격이었던 것 같다. 최근 발표한 『네오콘 이후:기로에 선 미국(After the Neocons: America at the Crossroads)』에서 그는 미국의 네오콘을 강력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그는 2004년 네오콘의 대부 어빙 크리스톨이 발행하는 '내셔널 인터레스트' 여름 호에서 부시 행정부의 선제공격론을 비난하면서 "전쟁 후 이라크 내 혼란은 미국의 실패를 입증하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인정을 구하는 투쟁”에서 시작한 그의 역사관은 “자유민주주의”라는 커다란 종착역에 도착했지만, 자유민주주의의 모델로 선정된 미국의 행보는 그의 기준에 미달이었던 모양이다. 이라크 전쟁을 계기로 전 세계에 반미 움직임이 일어나는 것에 대해서 후쿠야마도 모종의 책임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후쿠야마가 미국의 네오콘에 대해서 비판의 각을 세우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타국의 정치에 적극적으로 간섭하는 미국의 외교정책은 비난 받아 마땅하기 때문이다.


비록 그의 주장에 몇 가지 오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역사의 종말』은 의미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그는 헤겔이라는 강력한 사상을 바탕으로 세계 각국의 움직임에 대해서 일관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풍부한 그의 예시를 통해서 우리는 진짜 “자유민주주의란 무엇인가, 혹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라는 고민을 해볼 수 있다. 철학적으로 위험한 요소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정을 구하는 투쟁”이라는 주제 역시 시사적이다. 후쿠야마가 다루었던 것처럼, “주인과 노예”의 관계는 꽤 많은 사건들에 대해서 효과적인 설명을 제공할 수 있다. 다만, 그것만이 “유일한” 역사의 시작이라는 독단적인 생각은 배제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후쿠야마 자신도 『역사의 종말』의 마지막에서 자신의 의견을 반박할 수 있는 여지를 열어두고 있다. 그의 마지막 문장을 음미할 기회를 제공하면서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포장마차 행렬의 태반이 결국 같은 마을에 도달하더라도 어쩌면 승객들은 잠시 둘러보는 것 만으로도 그 신천지에 불만을 느끼고, 새로운 그리고 더 먼 여로로 눈을 돌릴지도 모른다. 우리들은 최후의 최후까지 그 결과를 알 수 없다.

<<完>>



■참고문헌 


권터 그라스 외, 이승협 옮김, 『세계화 이후의 민주주의』, 평사리, 1995.

버트란트 러셀, 이명숙 등 옮김, 『서양의 지혜』, 서광사, 1959.

정수일, 『이슬람 문명』, 창작과비평사, 2002.

프란시스 후쿠야마, 이상훈 옮김, 『역사의 종말』, 한마음사, 1992.

프란시스 후쿠야마, 안진환 옮김, 『강한 국가의 조건』, 황금가지,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