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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학자/역사문화

광주 산책후기

새로 이사한 부모님댁은 광주역과 유동 사거리 사이에 있다. 근처에는 현대백화점이 있다. 이렇게 말하면 굉장히 화려한 동네일 것 같지만, 사실상 공동화가 진행되고 있는 지역이다. 이 지역의 수많은 무인모텔들과 오래된 건물만이 예전의 화려했던 위용을 간직하고 있다. 광주를 산책하다보면, 광주길이 의외로 복잡하다는 데 놀라게 된다. 걷다보면 5거리는 수시로 만나고 심지어 6거리도 종종 보인다. 광주역을 중심으로 한 방사형의 도로가 옛 길과 합쳐지면서 이런 일이 발생한 게 아닌가 싶다. 

사진 1. 위령탑(꼭대기)


사진 2. 비석(향교 근처)


오늘은 양동시장을 지나 천변을 따라 걸어보았다. 천변을 따라가면 옛 기차길이 나오고, 기차길을 넘어가면 예전에 살던 봉선동이 나온다. 원래는 천변에서 옛날 무등극장쪽, 그러니까 역사적인 전남도청이 있었던, 지금은 문화의 전당을 공사하고 있는 지역으로 빠지려고 했다. 거기에 가면, 충장로의 불빛들과 24시간 커피숍 한두 개 쯤은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걷다보면 항상 생각이 바뀐다. 갑자기 광주천을 건너보고 싶어졌다. 뜻밖에 광주천을 건너자 향교가 툭 나왔다. 아, 여기에 향교가 있었지. 생각났다. 광주공원이다. 예전에는 포장마차가 일렬로 쭉 늘어서 있었고, 다른 한 편에는 돼지국밥집들이 즐비해있었다. 고등학교 다니던 1998년까지만 해도 거기에서 12시 넘어서 국밥을 먹었던 기억이 있다. 그 흔적들이 흔적도 없이 없어졌다는 것을 발걸음이 알려주었다. 

사진 3. 광주공원 매점



사진4. 성거사(백제시대 사찰)



그리고 그 위에는 성거산이라고 부르는 조그만 언덕이 있다. 사실 말이 산이지, 조그만 언덕이다. 주변지역이 전부 저지대 평지이기 때문에 여기 올라가면 광주시내를 대충 조망해볼 수 있다. 말하자면, 옛 사람들이 성스러운 곳으로 생각했을만한 산이다. 옆에 보니 고려시대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서오층 석탑이 있고, 그 옆에는 백제시대 사찰이라고 하는 성거사가 있었다. 더 올라가보니 엄청나게 큰 위령탑이 있었다. "우리 위한 영의 탑"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그러니까 따져보면, 가장 먼저 성거사가 들어서고, 그 이후 서오층탑을 지었으며, 그 다음에는 향교를 지었고, 군사정부는 다시 성거산의 꼭대기에 위령탑을 세우면서 이 일대를 광주공원으로 지정한다. 그 이후 천변쪽으로는 시민회관 건물이 들어섰고, 건물이 들어선 이후로 국밥집, 그 다음에 포장마차가 생겨났을 것이다. 지금은 포장마차촌과 국밥집들은 모두 없어졌다. 별 건 아니지만, 대략 증거들을 종합해보면 어떤 순서로 사람들이 건물을 지었는지 알 수 있다. 건물의 방향으로 볼 때, 지금 전남도청이 있는 쪽보다 고지대인 월산동 쪽이 전통적으로 광주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다음 월산동으로 이동했을 때, 처음으로 "무진슈퍼"를 발견했다. 

사진 5. 월산동 재개발 지역




여기가, 말하자면 옛날 광주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