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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꾼

"나 한줄도 못 쓰겠어"를 극복하는 법

논문이 벽돌나르기라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벽돌나르기는 물론 고된 노동이다. 거기에 비하면 논문 쓰는 일은 에어컨이 나오는 연구실에 앉아서 손가락 근육만 미세하게 움직이면 되니 조금 더 편하다고 느껴질지 모른다. 그러나 논문 쓰기에는 벽돌나르기를 할 때는 생기지 않는 특수한 어려움이 있다. 책상에 앉아서 논문쓸 준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순간이 많다는 것이다.

누구나 벽돌을 나르자고 마음 먹는 순간, 벽돌나르기를 시작할 수 있다. 작업반장이 "작업시작"이라고 신호를 주면 팔다리를 움직여 땅에 있는 벽돌을 한번에 옮길 수 있는 만큼 쌓아서 옮기면 된다. 그런데 작업 반장이 만약 "논문시작!"이라고 말한다면 어떨까? 누구나 앉아서 논문쓰기를 시작해낼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멍하게 앉아서 뭘써야 하는지를 생각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낼 것이다. 논문은 의외로 많은 정보과 작은 규칙들로 가득차 있으며 보통 사람들은 그 규칙과 정보, 그리고 배열순서를 고민해본 일조차 별로 없기 때문이다.

숙련된 학자라 하더라도 논문쓰기의 고통이 덜한 것은 아니다. 직업학학자들조차 "오늘은 한 줄도 쓰지 못했어"라고 말하는 경우를 흔하게 본다. 글을 쓰는 사람들, 예를 들어 소설가, 시나리오 작가, 카피라이터, 대학원생 등,은 이런 막막함에 익숙하다.

오늘은 이 막막함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글 쓸 때 찾아오는 막막함을 이겨내는 팁은 무엇이 있을까? 




1. 글이 써지지 않을 때는 과감하게 다른 일을 하라.
글이 써지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가장 큰 이유는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때는 과감하게 글을 놓고 다른 일을 하는 것이 좋다. 책상에 앉아서 글을 쓰지 않고 다른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야 말로 가장 비생산적인 일이다. 이 때 중요한 것은 '다른 일'은 논문과 관련 없는 일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주문을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책상에 앉아있는 시간에는 타이핑과 쓰기 말고 다른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2. 독서는 쓰기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글이 써지지 않을 때 많은 사람들은 글을 읽는 행위로 글을 쓰는 행위를 보충하려고 한다. 물론 읽기가 쓰기의 근본이 된다는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그러나 글을 쓰기 싫어서 읽게 되면, 읽었던 지식은 휘발유처럼 다 날아가버리고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할 때는 똑같은 막막함을 겪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글을 읽을 때조차 쓰면서 읽어야 한다. 컴퓨터를 앞에 놔두고 필요한 구절을 타이핑해가면서 읽어야 쓰기에 도움이 된다. 도피성 독서야 말로 글쓰는 사람들이 피해야 할 덕목이다.

3. "진짜 그게 글을 쓰지 못할 이유인가?"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공부란 본질적으로 즐거운 행위다. 글을 읽고 새로운 사실을 접하고, 모르는 것을 알게 되는 것만큼 즐거운 일도 별로 없다. 그러나 글을 쓰게 되면 이것은 공부와는 또 다른 차원의 노동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게 된다. 쓰는 것이야 말로 연구자를 연구자 주체로 만드는 가장 본질적인 행위이다. 이 행위는 물론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많은 대학원생들은 "어떤 이유 때문에 글을 쓰지 못하겠어"라고 말하는데 익숙하다. 

가장 대표적 핑계가 조상탓이다. "나는 글쓰는데 재능이 없어.", 혹은 "글쓰기를 어렸을 때부터 배웠어야 했는데..." 또 대표적 핑계는 지도교수 탓이다. "지도교수님이 방향을 안 정해줘서 쓰지 못하겠어." 또 다른 핑계는 목차 탓이다. "목차가 아직 잡히지 않아서 못 쓰겠어." 하다 못해 이렇게 이유라도 대면 다행이다. 많은 대학원생은 자신이 왜 쓰지 못하는지에 대한 핑계조차 대지 않은 채, 자신에게 얼마 남아있지 않은 그 소중한 공부할 시간을 허비해버린다. 


어떤 핑계이든지 글을 쓰지 못할 이유가 떠오른다면, 한번만 더 물어보자. "그것이 정말 글을 쓰지 못할 이유인가?"  글을 쓰지 못할 이유는 아무 것도 없다. 주제와 연구목적이 잡힌 경우라면 더더욱 그렇다. 연구주제를 완전히 쓰레기통에 버리지 않는 이상, 자기가 조사해놓은 소중한 참고문헌이 무용지물이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또 무용지물이 되면 어떠한가? 그렇다 하더라도 참고문헌을 찾는 노하우, 방식, 팁들은 고스란히 연구자 개인의 자산이 된다. 


고로, 쓰려고 마음먹으면 쓰면 된다. 서론을 쓰기 힘들면 이론적 배경부터 쓰자. 이론적 배경이 쓰기 힘들면 연구방법론부터 쓰면 된다. 연구방법론이 힘들다면 다시 서론을 쓰고, 서론이 쓰기 힘들다면, 다시 이론적 배경을 쓴다. 이 모든 것이 힘들다면 다음의 팁을 참고한다.

4. 목표를 세워놓고 일정 시간 이상을 타이핑하는데 시간을 쓴다.
글을 쓰기가 그렇게 어렵다고 치자. 서론이든 이론적 배경이든 연구방법론이든 아무 것도 쓸 수 없는 사람이라고 치자. 당장 프로포절은 한 달 앞으로 다가왔는데 아무 것도 쓰지 못하는 막막한 상황이라고 가정하자. 그럼 참고문헌 보면서 타이핑이라도 한다. 인용할 구절들을 찾아낸다고 가정하고 검색한 논문들을 아무 생각 없이 타이핑하기만 하더라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그리고 곧 '나도 이렇게 쓰면 되겠구나'라고 생각을 하게 된다. 책상에 앉아있는 순간에는 무엇인가를 타이핑하면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 막막함을 이겨내는 유일한 방법은 손가락 근육을 움직여 무언가를 쓰는 일이다.

*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책상에 앉아서 쓰지 않는 시간을 줄이라는 것이다. 단순해 보이지만, 중요한 지점이다. 연구자가 하루에 앉아 있는 시간은 정해져 있다. 아무리 부지런한 사람이라도 10시간 이상 앉아있기는 힘들다. 그리고 직장인이라면 하루에 1-2시간 앉아있기도 빠듯할 것이다. 그 얼마 되지 않는 소중한 순간을 버리지 않으려면 앉아있을 때 뭔가를 두드려야 한다. 앉아서 골똘히 상념에 빠지거나, 논문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내면 안된다. 창의력과 논리력은 머리가 아니라 손가락에서 나온다. 손가락을 부지런히 움직이는 자에게만 논리와 창의력이라는 뮤즈가 찾아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