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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꿈 이야기

선생에 대한 소고

나는 원래 선생이란 직업을 싫어했다. 철들고 나서 내가 선생을 보고 느낀 것은, 자기는 완전하지도 않으면서 끊임없이 학생을 대상으로 완전하라고 요구한다는 것이었다. 선생은 일시적으로 학생을 만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도 진보하지 않는다. 물론 처음에는 학생을 가르치는 데 익숙해지고, 아이들의 표정을 읽는 등의 훈련이 필요하다. 그러나 사람의 적응력은 대단해서 굉장히 빠른 시간내에 "선생"이 된다. 선생이 되고 나면, 매년 그는 자기보다 못한 존재들을 만나게 된다. 그러므로 선생은 진보하지 않아도 살 수 있다. 그게 선생이다. 

주변에 온통 선생뿐이었다. 아버지, 큰아버지, 작은아버지, 이모. 매년 다수의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들의 가장 근본적인 한계는 자신이 상대에게 배워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기회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선생은 대부분 독단적이고, 고집이 세다. 모든 선생이 지식인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준지식인 쯤은 된다. 그래도 강단에서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건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선생이란 직업에 대해서 처음으로 긍정할 수 있었던 계기는 어떤 대학원 수업에서였다. 대학원 수업은 세미나 형식이기 때문에 선생은 가르치기보다는 사회를 본다. 모든 경우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어떤 선생들은 그렇게 한다. 지식과 정보, 아이디어를 갖춘 대학원생들이 자유롭게 토론을 하고, 선생은 길잡이를 해준다. 그 수업을 통해 나는 선생이란 직업에 대해서 희망을 보았다.

선생을 하기 싫어서 교직 이수도 안했는데, 어느 순간 보니까 나는 강의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강의에 대한 수요는 의외로 굉장히 많았다. 이 세상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무엇인가를 배워야 할 사람들로 가득차 있다.  물론 내가 가르칠 수 있는 부분 중에서 실용적인 분야는 많지 않다. 재미있게도, 실용성은 돈과 비례한다. 실용성 있는 지식을 많이 가지고 있을수록, 강의를 많이 할 수 있다. 더 재미있는 것은 그나마 대학에서 실용성이 없지만 필요한 지식을 가르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대학은 여전히 희망이다. 

결국 나는 선생이 되었다. 물론 국가에서 부여한 선생 자격증은 없다. 박사학위도 없다. 그러나 누구 못지 않게 많은 강의를 하고 있다. 한가지 다행인 건, 그나마 10년 동안 공부해놓은 게 있으니, 어디 가서도 할 이야기는 많다는 것이다. 물론 10년 공부한 것을 평생 풀어먹고 살 수는 없다. 또 공부해야 한다. 그게 강사의 숙명이다. 더불어 나는 내가 정규직 선생이 아니기 때문에 더 노력할 수 있다고 본다. 그동안 내가 만든 강의자료는, 비록 체계적이지는 않지만, 가장 큰 나의 재산이다. 

나는 주식을 하지 않는다. 대신 책을 읽는다. 그게 돈이고, 그게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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