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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꿈 이야기

비트겐슈타인과 러셀(예전글)

1. 들어가기

   

세상은 사물의 총체가 아니라 사실의 총체이다.(논리철학논고, 1)


철학에서 언어의 문제는 20세기 내내 철학자들을 괴롭혀온 문제이다. 철학에서 언어가 어떤 역할을 차지하는지, 그리고 그 역할이 철학과 어떤 직접적인 연관을 맺는지에 대해서 19세기 이전의 철학자들은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헤겔의 정신철학은 이미 플라톤에서 만들었던 이데아적인 세계를 논리체계로 완벽하게 구축해버렸다. 헤겔이 살아있을 당시에만 해도 이제 "철학은 더 이상 연구할 것이 없다."는 패배감이 팽배해있었다. 플라톤, 토마스 아퀴나스, 칸트, 헤겔로 이어지는 관념론의 역사는 헤겔에 이르러 완벽한 논리체계를 갖춘 하나의 단단한 구조물이 되어 이제 기존의 언어로는 그 견고한 성벽을 파고들어갈 수 없었다.


관념론이 발흥할 즈음, 한편에서는 실존주의 철학의 대가들이 출현하기 시작했다. 쇼펜하우어와 니체로 이어지는 실존주의의 계보는, 그들 자신이 실존주의를 대변한다고 스스로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동양불교을 흡수해서 만들어진 사상이다. 기존의 관념론이 설명해내지 못하는 직관의 중요성, 그리고 실존에 부딪친 인간의 문제들을 연구할수록 실존주의와 관념론은 균열은 더해갔다. 니체는 칸트와 헤겔의 논리를 "흐르는 강물에 세워놓은 관념의 성당"이라는 말로 비꼬았다. 니체가 보기에 언어란 낡아빠진 동전과 같다는 것이다. 낡은 동전은 더 이상 무늬나 액수가 보이지 않아도 여전히 시중에 유통된다. 언어도 마찬가지이다. 원래 단어는 하나의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의미는 변화한다. 한국어에서 "즘생"이라는 단어가 원래 모든 생물을 가리키는 말이었지만, 지금은 "짐승"으로 변화해서 동물만 지칭하는 것이 좋은 예이다. 니체가 보기에 언어란 개념을 제대로 운반할 수 없는 나약한 체계이며, 그 체계 위에 서 있는 칸트와 헤겔의 논리는 결국 "흐르는 강물" 위에 서 있는 것처럼 불안하다는 것이다. 이 사상은 니힐리즘이 상당부분 불교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을 보여주는데, 일단 이 글에서는 이 부분은 다루지 않기로 한다.


철학에서 언어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이 문제는 철학의 생존과 관련된 문제였다. 일부 과격한 주장에 따르면, 철학은 이미 규정된 문법체계의 표현일 뿐(촘스키)이라는 주장에 철학은 어떻게 자신의 영역을 구축해낼 것인가? 이 질문은 철학의 위기와 관련되어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언어철학이라는 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분과 중에 하나를 탄생시켰다. 그리고 우리는 20세기에 소쉬르, 오스틴, 써럴, 러셀, 비트겐슈타인 등의 중요한 언어철학자들을 만나게 된다. 이 글의 관심사는 언어철학의 제 문제에서 러셀과 비트겐슈타인의 공적을 조망해보는 데 있다. 지칭론(Reperence Theory), 한정서술구 이론(Descriptive Theory), 그리고 화용론(Use Theory)을 살펴봄으로써 비트겐슈타인과 러셀의 언어철학에서의 위치를 대략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 외에도 심리학적으로 언어를 설명하려는 이론, 그리고 타르스키의 진리조건을 이용한 데이비드의 진리조건이론이 있지만, 일단 이 글에서는 러셀과 비트겐슈타인의 문제에 집중하도록 한다.

   

2. 러셀의 역설

   

버트란트 러셀은 수학자였다. 애초에 그는 철학보다는 수학자의 세계관의 소유자였다. 그가 기획했던 프로젝트는 세상의 모든 원리를 단순한 몇 개의 공식으로 표현하는 것이었다. 그는 수학의 정밀함을 신뢰했다. 그리고 실제로 세상은 수학적인 원리로 이루어져 있다고 믿고 있었다. 우리는 여기에서 중대한 균열을 발견할 수 있다. 수학적 세계와 실제 세계는 다르다는 점이다. 예컨대, 수학에서 1에 1을 더하면 2가 되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가령 눈물을 떨어트리고 거기에 한 방울의 눈물을 더 떨어트리면 우리는 한 방울의 눈물만을 발견할 수 있을 뿐이다.(한 방울의 눈물이라는 표현조차 어색한 물 덩어리) 러셀은 중요한 동료였던 화이트헤드와 함께 『수학의 기초』를 집필한다. 이 책은 무려 천 페이지가 넘는 분량의 책인데, 수학의 가장 기본적인 원리를 증명하는 데에 거의 모든 장을 할애하고 있다.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사람은 지은이 둘과 괴델 딱 세 명 뿐이라고 한다.
 

러셀은 논리를 연구하다가 수학적 원리를 수학으로 풀 수 없는 경우를 맞닥뜨리게 된다. 러셀의 역설이라고 알려진 그 문제는 다음과 같다. 어떤 이발사가 다음과 같은 팻말을 걸어놓았다고 하자. "저는 스스로 면도할 수 없는 사람만 면도합니다." 이발사는 스스로를 면도할 수 있을까? 없을까? 만약 이발사가 스스로 면도를 할 수 있다면, 그는 자기 자신을 면도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는 "스스로 면도할 수 없는" 사람만을 면도하니까. 반대로 이발사가 면도를 할 수 없다면, 면도할 대상은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면도할 능력이 없으므로, 자기 자신을 면도할 수 없다. 이것은 "자기자신"을 논리에서 어떻게 설명해야하는지 문제와 연결된다. 만약 수학의 원리로 세상의 어떤 이치를 설명해냈다면, "자기자신"은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수학이 수학을 증명할 수 없다면, 다시 말해 자기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세상에 그 수학의 원리가 통용될 수 있다하더라도 논리의 정당성을 잃게 된다.
 

이 문제에 대해서 괴델은 결국 "불확정성의 원리"를 밝혀내었다. 어떠한 수학적 공식도 그 가장 근본적인 부분은 스스로 증명해낼 수 없다는 원리이다. 러셀은 수학에 대한 연구를 접고, 철학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수학자인 그에게 철학은 보다 "말장난"의 여지가 있는 좀 더 쉬운 학문분야였을 것이다. 철학을 10년 동안 공부한 후, 그는 "서양철학사"를 출간했는데 이 책은 곧 서양철학사 중에서 가장 독보적인 책으로 인정받고 있다. 특히 그는 고대 그리스철학자들의 논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면서도, 중요한 내용에 대해서는 빠지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덧붙였다. 가령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론"을 인상적으로 비판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윤리적 덕목 중에 하나로 "중용"을 꼽았다. 만용과 비겁 사이에는 용기라는 중립적인 가치가 있다는 것이고, 우리는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은 중용의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러셀은 이 논리에 대해서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이 있음을 역설한다. 정직 정직하지 않음이라는 두 가지 극단적인 가치 중에서 우리는 그 사이에 있는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러셀은 중용은 모든 가치에 동등하게 적용될 수 없는 허약한 논리라는 점을 강조한다. 러셀의 서양철학사는, 이처럼 다소 어렵고 복잡해 보이는 철학자들의 논의에 대해서 러셀 자신의 코멘트를 덧붙임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비판의식을 성장시킬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었다.


3. 러셀의 언어철학

   

그렇다면 철학의 영역에서 러셀은 어떤 역할을 했는가? 러셀의 서양철학사에는 맑스와 플라톤이 모두 등장하는데(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그는 맑스에 대해서는 혹독하게 비판을 하는 반면 플라톤에 대해서는 상당부분 존경을 표현하고 있다. 철학을 크게 유물론/관념론으로 나누었을 때(물론 모든 경우에 이분법이 들어맞지는 않지만), 러셀은 관념론에 더 가까운 철학적 입장을 견지했다. 그의 언어철학은 한정서술구 이론과 간접지칭이론으로 요약할 수 있다. 먼저 이 이론을 소개하기 전에 언어철학에서 왜 러셀의 이론이 등장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언어철학의 문제는 가장 단순한 질문으로 출발한다. "단어는 왜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그것이다. 우리는 언어를 사용하고, 내가 무언가를 말할 때 당신은 그것을 이해해낸다. 이는 동물에게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 능력이며, 매우 신기한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다. 문자와 소리의 덩어리가 왜 의미를 가지게 되었는가? 이것이 바로 언어철학의 핵심적인 질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서 고전적인 철학들은 사물과 대상간의 지칭관계를 설정해 두었다. 가령 우리가 사과라고 부르는 빨갛고, 동그란 과일을 "사과"라는 문자, 혹은 음성의 덩어리로 지칭하기로 약속했다는 것이다. 이 이론은 존 스튜어트 밀의 주장에서 비롯되었는데, 밀의 관점에서 "사과"라는 단어는 사물과 연결되어 있었다.


이 대답은 직관적으로 명쾌해 보이지만 수많은 문제들을 안고 있었다. 가령 영어의 "Nobody"의 경우는 무엇을 지칭하는가? 그리고 관사와 조사의 경우에는 지칭하는 대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의미를 지니고 있지 않은가? 또 이런 문제도 있었다. "노무현은 한국의 대통령이다."라는 문장은 우리에게 어떤 정보를 준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노무현은 현재 한국의 대통령이지만, 이 말이 나중에도 맞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노무현"과 "한국의 대통령"은 지금 비록 지칭하는 대상이 같지만, 나중에는 달라진다. 한 단어가 여러 사물을 지칭하는 것은 또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와 같은 수많은 문제들은 "지칭이론"의 입지를 한껏 좁혀놓았다. 언어이론은 언어의 의미가 어디서 파생되는지에 대해서 좀 더 세련된 설명을 필요로 했고, 러셀은 "한정서술구"이론은 위의 문제들을 상당부분 해소해주었다. 한정서술구 이론이란 한 단어의 의미가 여러 단어로 구성된 어떤 서술구(description)을 미리 포함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가령 러셀은 영어의 더(the)에 다음과 같은 의미가 미리 내포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1. 최소 1개의 x가 존재하고,

2. 최대 1개의 x가 존재하며,

3. 그것은 ... 이다.


더를 분석해본 결과 러셀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발견하였고, 이것은 다른 모든 단어에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보았다. 가령 63빌딩은 "여의도에서 가장 높은 빌딩"으로 서술될 수 있다. 이런 개념의 덩어리가 이미 단어 안에 포함되어 있다는 말이다. "프랑스왕은 대머리이다."라는 문장이 있다. "프랑스의 왕"은 없기 때문에 이 문장에서 지칭하는 바는 없지만, 실제 우리는 "프랑스"와 "왕"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알고 있고, 따라서 위의 문장은 "틀렸지만", "의미를 가진다." 러셀의 이론에 따르면 노바디의 문제도 쉽게 해결할 수 있다. 노바디(nobody)란 이미 "아무도 없는 상태"를 표현한다는 것이다.


러셀의 이론은 기존의 지칭이론보다는 좀 더 세련된 설명을 제공했지만, 물론 완벽한 것은 아니었다. 최초로 제기되는 질문은 이런 것이다. "과연 그런 의미는 또 어디에서 왔는가?" 가령 "63빌딩=여의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라는 한정서술구가 있다면, "여의도" "가장" "빌딩" 등의 단어 역시 서술구를 포함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단어를 이루는 서술구에도 단어가 있을 것이고, 또 단어의 의미를 설명하는 단어가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단 하나의 단어를 알기 위해서 무한하게 많은 "개념"을 미리 알고 있어야 하는데, 이것은 어불성설이다. 우리는 "무한퇴행"의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스토로슨은 이에 대한 강력한 반박을 제시했다. 가령 "모두가 그녀를 좋아해"라는 문장이 있다고 하자. 그렇다면 여기서 "모두"는 누구일까? 우리는 이 세상에 있는 60억 인구가 모두 그녀를 좋아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다. 설사 위의 문장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여기서 "모두"는 세상 사람들 중에서도 "그녀"와 사회적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을 지칭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스트로슨의 관점에 의하면 언어는 사회적 관계로부터 온 약속이며, 러셀이 말한 "한정서술구"라는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나중에 도넬란의 구분까지 이어지는 좀 더 복잡한 논의가 필요한 내용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우리가 살펴본 바에 따라서 러셀의 언어철학에 대한 그림을 그려볼 수 있다.


첫째, 그는 언어 뒤에는 개념이 존재한다고 보았다. 둘째, 그는 한 단어가 언어를 직접 지칭할 수 없다고 규정함으로써 지칭이론의 문제점을 상당부분 해결하였다. 셋째, 그의 언어이론은 논리의 세계와 일상세계를 구분하고 있다. 러셀은 논리의 세계와 일상이 완벽하게 구분되어있다고 보았는데, 이와 같은 견해는 전술한 "수학의 불완전성"을 충분히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와 같은 러셀의 철학은 비트겐슈타인을 만나서 "분석철학"의 수준으로 진화하게 된다.

   

3.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논고』

   

비트겐슈타인의 사상은 초기사상과 후기사상으로 명확하게 구분된다. 우리는 러셀의 언어철학과 관련된 이야기를 해 왔기 때문에, 먼저 비트겐슈타인의 전기사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비트겐슈타인은 그의 나이 스물아홉에 논리철학논고를 완성했다. 이 원고는 그가 1차대전에 참전하면서 틈틈이 써온 원고였다. 그는 케임브릿지에서 러셀의 제자로 공부를 하다가 중단했다. 그리고 자신의 원고를 학위논문으로 제출하는데, 이 책은 논문의 형식을 전혀 갖추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학위논문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자신의 친구이자, 철학자인 무어에게 보낸 비트겐슈타인의 편지를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을 발견할 수 있다.

   

"내 글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는 따위의 학위는 없어도 된다."


결국 그 책은 철학의 역사를 확 뒤집어놓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철학서 중에 하나로 등극한다. 그 책이 바로 "논리철학논고"(이하 "논고")이다. 논고는 사유의 순서대로 차근차근 전개된다. 이 책의 상당부분은 언어철학에 관한 내용이기도 하지만, 심리학과 윤리학 등의 다양한 함의를 담고 있다.


"논고"는 "세상은 사물의 총체가 아니라 사실의 총체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해,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문장으로 끝난다. 심지어 이 책으로 말미암아 철학의 모든 문제는 해결되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비트겐슈타인도 스스로 철학은 더 이상 연구할 필요가 없다고 결론짓고, 이 책 이후에 한동안 아무런 철학적 활동도 하지 않았다. 왜 우리는 말할 수 없는 것에 침묵해야만 하는가?


비트겐슈타인에 따르면 모든 철학은 문법적 착각이다. 먼저 그는 언어를 두 가지 범주로 나눈다. 첫째, 논리적인 언어. 둘째, 일상 언어. 비트겐슈타인에 따르면 모든 논리는 "비가 오거나 비가 오지 않거나 둘 중에 하나이다."라는 식의 동어반복적인 정보밖에 줄 수 없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삼단연역법을 보면 우리는 이 점을 쉽게 알 수 있다.

   

1. 모든 인간은 죽는다.

2. 소크라테스는 인간이다.

3. 따라서 소크라테스는 죽는다.

   

위의 삼단논법에는 이미 두 가지 정보가 주어져 있고, 따라서 세 번째 논리를 도출할 수 있는 것이다. 논리에서 필요한 것은 미리 주어진 지식들인데, 그 지식은 논리의 세계에서만 존재할 뿐, 일상 언어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일상 언어란 우리가 일상생활에 사용하는 쉬운 언어들이다. 반면, 자유, 평등, 신 등의 추상적인 단어는 문장의 규칙을 어기고, 문법에 침투함으로써 문장에 엉뚱한 의미를 가진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모든 것이 존재하기 전에 시간은 존재했는가?"라는 문장을 만들어 보자. 이 문장은 논리적으로는 가능하지만, 기본적인 문법의 규칙을 어기고 있다는 것이 분석철학의 주장이다. 원래 시간이란 어떠한 행위에 의해서 정의되며, 단위를 지정했을 때에만 '시간'이라는 낱말의 의미를 충족시킬 수 있다. 사람들은 고민한다. 존재하기 전에 시간은 과연 있었을까? 생각하면 할수록 모호하고, 답이 나오질 않는다. 이 순간 우리는 뭔가 신비롭고, 멋진 고민에 빠진다는 착각을 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철학의 출발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비트겐슈타인의 견해이다. "시간"이라는 단어가 출현한 것은 그것을 인간이 시간을 정의하고, 사용했기 때문이기 때문에 그 전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상상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비트겐슈타인은 문장을 올바로 사용하기만 하면, 철학적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했다. 철학의 임무는 불명료한 단어들을 문장에서 확 걷어내고, 사고를 명징하게 하는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자들에게 일상언어를 사용하고, 문법에 맞는 언어를 사용하라고 주문한다. 그런 몇 가지 규칙만 지키면 철학이 가진 모든 모호한 문제들은 사라진다는 것이다. 이는 러셀의 한정서술구 이론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그것은 둘 다 논리적인 공간을 따로 상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상의 언어와 논리의 언어를 구분하는 것이 분석철학의 출발이었다.


러셀의 경우에 논리적인 세계는 지칭이 가능한 완벽한 세계였지만, 비트겐슈타인은 논리적 세계란 "우리에게 아무런 정보도 줄 수 없는" 동어반복에 불과하다고 보았던 것이다. 따라서 논리적 세계는 존재하지 않지만, 인간은 세상을 "사물"이 아닌 "사실"로 받아들이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세상은 사실의 총체다."라는 "논고"의 첫 구절은 보통 사람들의 의식구조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런데 이 문제를 제기한 사람은 비트겐슈타인이 처음은 아니었다. 우리에게는 회의적인 철학자로 알려져 있는 데이비드 흄이 바로 그런 예라고 할 수 있겠다.

   

4. 비트겐슈타인과 인과성

   

나는 글이 지저분해지는 것을 원하지 않지만, 인과성의 문제를 논하기 위해서 흄과 칸트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인과성이란 말 그대로 어떤 사건과 다른 사건과 인과관계를 가지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A라는 사건의 원인은 B라고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 불교의 핵심적인 사상인 "연기론"은 인과관계에 대한 신뢰를 명확히 보여주며, 고대국문학에서 자주 등장하는 "권선징악"의 코드는 인과관계에 대한 일반인의 믿음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논리는 인과관계를 바탕으로 한다. A이면 B이다, 라는 인과관계가 없다면, 논리는 우리에게 아무런 정보도 주지 못할 것이다.


흄은 극단적인 경험주의자였다. 흄에 따르면 우리가 사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정보는 감각정보뿐이다. 동전은 금속성 재질로 되어 있고, 쇠냄새가 나며, 글자가 새겨져 있다는 특징들 따위로 다른 사물과 구분된다. 동전을 아무리 살펴보아도 동전이 동전이어야만 하는 본질은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흄은 동전이라는 사물은 감각정보의 다발일 뿐, 우리의 정신세계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문제는 감각정보가 부실하다는 점이다. 감각정보는 인지하는 사람의 시각, 감수성, 예민성 등에 엄청난 영향을 받아서 결정되며, 모든 사람은 서로 다른 감각정보를 가지고 있다. 이런 문제도 있다. 흄에 따르면, 철학은 자아를 탐구하기도 하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그는 "나를 느낄 수 없다."고 한다. 이와 같은 극단적 회의주의는 인과성의 부정으로 귀결된다. 흄이 보기에 A라는 사건과 B라는 사건이 인과적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아무리 "인과"를 인지하려고 해도 알아낼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흄은 철저하게 인과성을 부정한 회의주의자의 반열에 올라간다.


칸트는 아프리오리(선험)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흄을 비판했다. 흄의 논리에 따르면 우리가 사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정보는 감각정보 뿐이라고 하는데, 그 감각정보는 불완전하다고 한다. 따라서 우리는 사물의 진정한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것이 흄의 인식론이다. 칸트는 모든 인간이 선험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선험이란 경험하기 이전에 우리가 사물을 인지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칸트는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선험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좀 더 넓은 의미에서 보자면 우리가 이 사건을 경험하기 전의 어떤 경험도 선험이라고 할 수 있다. 가령 우리는 기차를 "기차"라고 인식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우리가 기차를 타보고, 배우고, 느낀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일종의 '선험'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선험'이 없는 19세기 중반의 조선인이 기차를 처음 보았다면, 그들은 굉장한 공포를 느낄지도 모른다. '선험'의 유무에 따라서 사물을 인지하는 능력이 바뀐다. 칸트는 아무리 어린 아이라도 '시간'과 '공간'을 인지할 능력이 있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시간과 공간이라는 기준을 통해서 사물을 바라보며, 이는 단순한 감각정보 이외에 다른 정보가 사물을 인지할 때 도움을 준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따라서 우리는 사물의 본질을 전혀 인지할 수 없다는 흄의 주장은 칸트의 선험론으로 반박될 수 있다.


만약 우리가 사물에 대해서 감각정보 이상의 무엇을 인지할 수 있다면, 그래서 사물의 본질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면, 인과론에 대한 인식도 바꿀 수 있는 논거가 된다. "선험이 있기 때문에 사물을 인지할 수 있다."는 명확한 인과관계가 성립되기 때문이다. 적어도 하나의 인과관계가 있다는 점을 증명할 수 있다면, 우리는 다른 인과관계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좀 더 쉽게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은 칸트의 '인과성' 논증에서 선험을 제거한 것이다. 선험이 제거된 상태에서는 다시 논리의 모든 결론은 동어반복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초기의 비트겐슈타인의 사상은 논리의 세계에서는 인과가 있을 수 있지만, 그 논증은 동어반복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논리적인 세계의 담론은 일상생활에는 끼어들지 말아야할 그 무엇이 된다. 철학자들은 논리적 언어를 일상 언어와 동등하게 취급하기 때문에 풀 수 없는 문장들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만 한다"라는 문장으로 대표되는 비트겐슈타인의 경구는 바로 철학자들이 그동안 "언어의 규칙을 어겼다."는 말을 내포하고 있다.


넓은 범주에서 초기의 비트겐슈타인 철학을 분석철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실제 언어는 일상 언어와 논리적 언어가 복잡하게 얽혀있어서, 이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문장을 분석해야 하는 것이다. 오스트리아의 비엔나에서는 이 주장이 커다란 각광을 받았는데, 그들은 "비엔나 학파"라는 분석철학 학파를 형성하고, 이들은 20세기에 가장 중요한 언어철학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논리실증주의란 무의미하거나 모호한 주장을 논리적으로 분석해서 검증해야만 그 주장을 인정할 수 있다는 엄밀한 실증주의의 한 분과이다. 20년이 지나서 비트겐슈타인은 자신의 주장에 논리적 결함이 있다는 점을 발견하고, 『철학적탐구』로 대표되는 후기 사상을 가지게 되었다.

   

5. 『철학적 탐구』와 그 영향

   

"철학적 탐구"(이하, "탐구")는 비트겐슈타인의 생전에 출간되지 못했다. 비트겐슈타인 생전에 그가 낸 철학서는 "논고" 한 권뿐이었다. 비트겐슈타인은 모든 철학적인 문제를 다 해결했다고 생각하고, 그 뒤로는 철학에서 손을 떼고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재직했다. 그는 한 맑스주의 계열의 친구와 철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자신의 언어관에 결정적인 흠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따지고 보면, 언어는 사회적 관계의 산물이며, 의미가 생성될 때 그 사람이 맺고 있는 사회, 분위기, 성격 등 모든 것의 영향을 받는다. 애초에 그가 생각했던 "논리적 언어"조차도 어쩌면 사회적 맥락의 산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는 후기철학을 정립하게 된다. 이미 그의 이론이 많이 알려져 있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간단하게 후기사상을 정리하고, 그 의의를 살펴보고자 한다.


'탐구'에서 비트겐슈타인은 단어의 쓰임새가 곧 의미라는 점을 강조했다. 우리가 "석판!"이라고 크게 외칠 때, 그것이 어디서 발화되느냐에 따라서 단어의 의미는 바뀐다. 공사장에서 인부가 석판을 가져오라는 말이 될 수도 있고, 때로는 석판이 떨어지고 있으니 조심하라는 의미가 될 수도 있다. "석판"의 의미는 상황에 따라서, 꽤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 현상에 주목하다보면, 실제로 많은 발화가 "진정한 본래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기보다는 상황과 맥락에 의해서 결정되는 측면이 많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언어자체를 분석해 보아야 별 소득이 없다. 후기사상에서 그는 언어를 연구하려면 시장에 나가서 수많은 사람들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단어를 발화하며, 그것이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지는가가 중요하다.


화용론의 관점에서 단어는 '고정된'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다. 언어를 사용할 때마다 단어의 의미는 조금씩 바뀐다. 그러나 '자유'라는 단어의 의미가 '소금'이나 '책'처럼 전혀 뜬금없는 뜻을 가지지는 않는다. 이 점을 비트겐슈타인은 가족유사성이라는 개념을 통해 설명한다. 가족들은 대부분 얼굴이 비슷비슷하지만, 완전히 똑같은 얼굴은 아니며, 약간의 공통성을 발견할 수 있을 뿐이다. 이처럼 언어의 의미도 발화되는 상황에 따라서 조금씩 바뀌는데 그 차이는 한 가족의 얼굴에서 보이는 정도의 유사성을 가진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좀 더 깊이 들어가면, 비트겐슈타인의 후기 사상에서 언어란 장기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장기를 둘 때 일정한 규칙을 가지고, 말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것처럼 언어도 마찬가지이다. 언어를 사용하는 데에도 몇 가지 규칙(예를 들면 문법)을 지키면서 자유롭게 단어를 사용할 수 있다. 때로는 적절하지 못한 단어가 들어가 문장의 이해를 어렵게 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은 아니다. 가령 "프랑스왕은 대머리다."라고 말하는 경우 "알재오제방" 따위의 글자 덩어리보다는 더 이해하기 쉬운 의미를 가지는데, 그것은 위의 문장이 언어의 규칙을 지켰기 때문이다.


우리는 위의 글을 통해서 러셀과 비트겐슈타인이 어떤 차이를 가지는지 대략적인 개념을 가지게 되었다. 러셀은 시종일관 논리의 힘을 믿었고, 분석을 통해서 언어의 진짜 의미에 다가가려고 했다. 초기의 비트겐슈타인은 러셀과 상당히 비슷하거나, 러셀보다 진화된 언어의 개념을 정립했다. 초기사상에서 비트겐슈타인에게 언어란 논리적 언어/일상언어로 구분되어 있으며 이 둘은 명백한 차이를 가지는 존재였다. 분석철학을 끝까지 밀고나간 결과 비트겐슈타인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고 말한 반면, 러셀은 그래도 개념과 논리에 대한 확신을 끝까지 놓지 않았다.


비트겐슈타인의 후기 사상은 러셀과 전혀 다른 차원으로 바뀐다. 논리공간에 대한 믿음이 없어지면서, 비트겐슈타인은 지상으로 내려와 사람들이 언어를 "사용하는" 방식에 주목한다. 러셀은 언어를 공부하기 위해서 시장에 나가지 않는다. 그는 단어 하나하나를 분석하면 그 언어가 가진 한정서술구를 발견할 수 있다고 믿었던 반면, 비트겐슈타인은 결국 언어도 사회적 관계의 일부라는 맑스적인 아이디어를 차용했다.


이 둘의 차이는 축구와 바둑을 예로 좀 더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다. 축구와 바둑의 가장 본질적인 차이는 무엇일까? 우리는 축구가 좀 더 "규칙에 의존적인" 경기라는 점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축구를 즐기기 위해서는 어떤 크기의 골대에서, 어떤 크기의 운동장에서, 몇 명의 인원이라는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물론 이 규칙은 조금 느슨하다 하더라도 말이다. 가령 컴퓨터 게임으로 축구를 즐겼다고 해서, "축구를 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반면 바둑의 경우에는 몇 가지 단순한 규칙만 지키면 상대적으로 규칙에 의해서 자유롭다. 컴퓨터로 바둑을 두는 경우에도 우리는 어렵지 않게 "바둑을 두었다."고 말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초기의 비트겐슈타인과 러셀은 언어를 축구처럼 이해했다. 언어 속에는 많은 논리와 규칙이 정해져 있고, 상대적으로 언어가 가지는 '자율성'(?)이나 독창성에는 인색한 평가를 내렸다. 반면 후기의 비트겐슈타인은 언어를 장기나 바둑처럼 이해했다. 우리가 가장 기본적인 규칙을 지키기만 하면, 사회와 문맥 속에서 언어는 다양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그리고 비트겐슈타인의 후기 사상은 그 의미는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장기 말을 우리가 임의로 사용할 수 있는 것처럼 언어의 의미도 유동적이라고 주장이었다.


비트겐슈타인의 후기사상에서도 철학을 부정하는 측면은 그대로 드러난다. "철학적 탐구"라는 말은 비트겐슈타인이 철학을 비꼬기 위해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그에게 철학이란 "언어가 우리의 오성에 마법을 거는 것에 반대하는 투쟁"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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