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리학자

동북아시아 지역연구

지역연구의 흐름

전통적으로 지리학은 현상에 대한 기술을 다루는 학문이었다. 고대 시대의 지리학은 프톨레마이오스의 Geography에서도 나타나듯이 장소에 대한 특성을 기술하고, 지역에 대한 정보를 기록하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었다. 또 한편으로, 지도를 만들고 제작하는 일 역시 지리학이 담당하는 주된 임무였다. 신대륙 발견 이후 지리학자들은 아메리카 대륙을 다니면서 현지조사에 나섰고, 제국주의 시대를 맞으면서 지리학자는 더 많은 장소에 대해서 기술해야 하는 임무를 맡았다.

전통적인 의미에서 지리학은 곧 지역연구였으며, 아직도 지역연구는 지리학에서 가장 중심적인 분야로 남아있다. 19세기 후반에 유럽에서는 지리학의 흐름을 결정하는 여러 사건들이 발생한다. 라쩰과 맥킨더는 사회진화론에 영향을 받아서 인간의 환경의 영향을 가장 강하게 받는 존재라고 설명하였다. 특히 맥킨더는 동유럽을 지배한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이른바 심장부이론을 발표하면서 지정학 결정론을 펴게 되었다. 당시 쇠락해 가던 영국을 살리기 위해서 맥킨더는 적극적으로 동유럽에 제국주의를 확장해 나갈 것을 주장하였다. 이와 같은 시도는 기존의 지리학이 지역연구에만 머물러 있었던 것에 대한 반성을 기반으로 한 것이었다.

지역연구에 대한 반발은 20세기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1930년대 일군의 경제학자들은 '지리의 죽음'이라는 논제를 통하여 경제가 발전할수록 모든 장소가 동일해질 것이기 때문에 지리학은 더 이상 쓸모가 없다는 논의를 펼쳐나갔다. 이에 대해서 지리학은 적극적으로 과학적 방법론을 도입하여 위기를 해쳐나가려고 하였다. 특히 1950년대 유행하던 오스트리아 빈학파의 영향을 받은 논리실증주의는 지리학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논리실증주의는 17세기 이어져 오던 과학혁명의 전통과 맞물리면서, 학문 분과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논리실증주의가 전개되면서, 학문의 연구는 가설-검정 방법론이 힘을 얻게 되었고, 지리학은 지역연구가 아닌 공간과학을 표방하게 된다. 

특히 1950년대 후반부터는 계량 방법론이 급격하게 발달하면서, 지리학 내에서도 많은 방법론들이 개발되었다. 지리학자들은 더 이상 한 지역의 전문가가 되기 보다는, 보다 거시적으로 공간을 관통하는 법칙을 규명하는 데에 골몰하였다. 특히 교통 분야와 인구분야는 계량적 방법론이 도입되면서, 학문발달에서 매우 중요한 전기를 맞게 되었다. 그러나 1960년대 후반부터 계량지리학에 대해서는 여러 반론들이 제기된다. 특히 1968년에 전개된 일련의 역사적 사건들, 예를 들어 유럽의 혁명, 베트남 전쟁, 마틴루터킹 목사의 흑인 인권운동 등이 전개되면서, 지리학자들은 보다 본질적으로 사회과학적으로 지리학이 해야 할 임무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었다. 

그러나 과거에 지역연구가 개성기술적 연구라는 반론이 있었으므로, 지역지리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철학적 전기가 필요했다. 이 때 인문지리학자들은 후설이나 하이데거의 이론에 기반한 현상학과 해석학을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인문지리가 발전하게 되었다. 새로운 지역연구를 하는 과정에서는 공간의 개념도 다르게 받아들여졌다. 과거의 지리학자들은 공간을 현상을 담는 컨테이너로 보았다면, 1960년대 이후 인문지리학자들은 장소와 공간을 삶과 뗄 수 없는 유기체로 보는 시각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신지역연구에서는 장소성이나 로캘리티와 같은 개념을 도입하여 과거의 개성기술적 연구와의 차별성을 도모하려고 노력했다.

분과별로 보면 차이가 있지만, 대략적으로 인문지리의 큰 흐름은 크게 세 종류 정도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는 기든스의 구조화 이론을 받아들인 로캘리티 기반연구이다. 둘째는, 데이비드 하비를 위시한 급진적 지리학이며, 셋째는 푸코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포스트모던 연구이다. 이와 같은 구분은 아주 명확하게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지역연구에서 큰 흐름을 결정하는 연구경향이라고 할 수 있다.

인문지리의 발전과정은 결국 지리학이 지역연구를 완전히 버릴 수 없다는 것을 재확인하는 지난한 과정이었다. 신고전파경제학을 비롯하여, 과학을 표방하는 많은 사회과학적 학문분과들이 이제는 더 이상 생산적인 설명을 제시하지 못하는 형편이다. 특히 2007년 금융위기와 최근 발생한 그리스 부도위기 등 세계는 과거 신고전파에 이론적 기반을 둔 금융상품으로 인해 오히려 위기가 증폭되고 있다. 또한, 신자유주의가 전 지구적으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면서 지리적 불균등 현상을 촉진하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지역연구는 여전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보편성에 대한 모든 지식들을 종합한다해도 그것은 공간에서 구체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보여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언제나 이론은 현실과 달랐고, 현실을 설명하기 위한 이론은 결코 완전할 수 없다. 특히 변화무쌍하게 진화하는 21세기의 지구적 현실을 감안할 때, 지리학의 임무였던 지역연구는 여전히 구체적 공간에 대한 설명을 제공하는 효과적인 방법론이다.  


'지리학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상인터뷰: 지리학이라구?  (0) 2012.10.11
페미니즘과 사회생물학  (5) 2012.08.06
기업의 자본조달방식  (0) 2012.03.21
산업클러스터의 진화과정  (0) 2011.09.14
비판지리학 연구경향  (0) 2011.0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