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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학자

페미니즘과 사회생물학

사회생물학과 페미니즘의 만남보다 더 흥미진진한 관계는 드물 것 같다. 페미니즘은 여성의 해방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일단 기본적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더 능력이 부족하지 않음을 입증하려고 한다. 그리고 여성을 둘러싼 대부분의 차별은 다른 요소보다도 문화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싶어한다. 그 문화는 당연히 가부장제이다. 


여성은 종종 가부장제 내에서 피해를 받아온 것으로 이해되곤 하는데, 이것은 초기 페미니즘이 만든 일종의 허구적 스토리이다. 만약 가부장제가 남성을 위한 가족제도라면, 동물들 사이에서는 그러한 가족제도가 나타나지 않아야 할 것이다. 동물들 사이에 가부장제가 나타난다면, 가부장제는 문화적 요인이 아니라 생물학적 요인에 기인한 것이라고 잠정적으로 결론지을 만 하다. 동물들에게 가부장제가 있을까? 


당연히 있다. 특히 영장류로 올수록, 즉 고등동물이 될 수록 가부장제가 나타날 확률은 높아진다. 가부장제가 생물학적 원리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가부장제는 사회문화적 산물인 것만은 아니기 때문에 완전히 거부할 수 없는 무엇이 되어버린다. 


이 지점에서 페미니스트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인간을 완전히 이성적인 존재로 그릴 것인가, 아니면 생물학적인 존재로 그릴 것인가? 만약 인간을 이성적인 존재로 그린다면, 가부장제를 선택한 것이 남성이었음을 밝히면 된다. 그렇다면, 여성은 남성의 선택에 의한 피해자가 된다. 그러나 이 경우 남성과 여성 사이의 신체적 차이는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 그것은 “이성”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페미니스트가 인간을 생물학적인 존재로 묘사할 때는 더 문제가 복잡해진다. 고등동물일 수록, 그리고 인간과 비슷해지면 질수록 인간에게서 나타나는 가부장제의 형태는 많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남녀간의 생물학적 차이를 본원적인 것으로 인정한다면, 이들간의 분업 또한 합리적인 것으로 이해할 수 밖에 없다. 인간을 생물학적인 존재로 볼 때, 그 결과는 당연히 가부장제가 생물학적 법칙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양쪽의 논리가 모두 허술한 이유는 페미니즘이라는 학문이 성립되기 위한 입장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결론을 맞춰두고, 나중에 생물학이나 정치학의 이론을 끼워맞춰서 가부장제에 대한 이론을 정립하려고 하기 때문에 여기저기서 빵꾸가 나고 물새는 소리가 들린다. 게다가 가부장제가 무너져가고 있는 이 시점에도 끝까지 가부장제에 의해 피해를 받은 여성에게 주목하며, 현란한 이론놀음을 하기에 바쁘다. 


이론이 길어지면, 그 이론을 통해서 별로 얻을 것이 없다고 누군가 말했다. 초기 자유주의 페미니즘은 여성과 남성을 동등한 주체로 보아, 여성의 권리를 남성의 그것만큼 끌어올리려고 시도했다. 그리고 투표권과 사회권 등 여성의 권리는 어느 정도 보완되었다. 그러나 사회적인 인식은 그렇게 쉽게 바뀌는 것이 아니다. 마르크스주의나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사회제도 자체를 공격하며, 남성과 여성을 대립적인 관계로 몰아세웠다. 모계사회에서는 여성이 가족관계의 주도권을 가지고 있었으나, 농경사회 이후 가부장제를 통해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들의 주장은 인간 사회에서 어느 시점에 그러한 전환이 일어났는지조차 명확하게 알 수 없으며, 한마디로 반증불가능하다. 


페미니즘은 엉뚱하게도 사회생물학을 공격한다. 사회생물학은 결국 인간과 동물이 비슷하다는 잘못된 전제에서부터 출발했으며, 나아가 인간의 자율성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간과 동물이 똑같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거짓을 말하는 게 확실하다. 그러나 인간과 동물이 전혀 다르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앞선 사람보다 더 큰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게다가 유인원의 행동으로부터 우리가 인간에 대한 단서를 찾을 수 없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이야 말로 인간 존재를 왜곡하는 것이다. 


사회생물학은 그것 자체로 인간을 완전하게 설명한다고 볼 수는 없지만, 사회생물학을 제외하고서는 인간에 대한 완전한 설명이 되었다고 할 수 없다. 물론 다윈은 여성의 모성본능을 필요 이상으로 찬양한 측면은 있다. 이러한 다윈의 언급은 나중에 여성성과 평화, 혹은 여성성과 이타심 등의 상관성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훈훈하게, “여성적 가치도 훌륭하다”는 것으로 마무리짓고 싶은 것이다. 여성적 가치, 그런 게 실제로 있다면, 그것은 생존전략일 뿐 좋고 나쁨을 따질 수 있는 성질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남성성, 그런 것이 있기는 한다면, 다가오는 21세기 이후의 사회에서 약해질 것이 불보듯 뻔하다. 물론 이것은 사회생물학으로부터 유추할 수 있는 정보는 아니다. 


여성들이 가부장제로부터 일방적 피해를 받아왔다는 페미니스트의 주장은 실제 역사보다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많은 정보를 준다. 왜냐하면, 그들의 의식 속에 남성이란 기존의 가부장제를 통해 여성을 착취해온 종족이라는 존재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이 존속하는 한, 이른바 페미니스트들은 이 점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이 점을 부인하는 순간 그(녀)는 페미니스트가 아닌 것이 된다. 그러므로 답은 간단하다. 사전에 이토록 공고한 전제를 깔고 시작하는 논리는 학문이 아니라 종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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