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은 아직 젋다!

유시민 전 장관(이후 존경하지만, 호칭 생략)의 이름을 보면서, 생각했다. 정치를 하는 사람에게 이보다 더 좋은 이름이 있을 수 있을까? 

종종 유시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술자리는 뜨거워진다. 확실히 그는 영향력 있는 사람이다. 막상 그에 대해서 쓰려고 하면 너무 할 말이 많다. <항소이유서>에서 주었던 감동(O), <거꾸로 읽는 세계사>와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 등 저술가로서의 명망(O), 시사평론가 시절 김대중 전 대통령을 혹독하게 비판했던 모습(X), 개혁당을 박차고 나와서(X) 노무현 지지(O), 참여정부 시절 노무현에 대한 무한한 충성(O), 보건복지부 장관으로서 선전(O), 대구 수성구 출마 후 낙선(X), 경기도지사 출마 후 낙선(X), 국민참여당 창당(X), 통합진보당 사태 때 대처(X) 등 너무 많은 장면과 이슈들이 한꺼번에 떠오른다(참고로 그의 행적을 일일히 평가할 수 없으니, 괄호 안에 대략적인 판단을 넣어보았다. 짐작하는 것처럼 O는 긍정적, X는 부정적 평가). 간단히 평가를 해보니, 비교적 최근으로 올수록 정치적 평가가 부정적으로 나타난다(물론 개인적 견해이다). 

예로부터 이 바닥에서 떠도는 말이 있다. “글로는 유시민 못 당하고, 말로는 진중권 못 당한다”는 것이다. 얼마전, 진중권은 변희재에게 당했다. 하지만, 유시민을 글로 이겼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아직 보지 못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유시민은 매번 졌다. 유시민은 참여정부를 만드는 데 일조했지만, 그 댓가로 개혁당은 와해되었다. 대구 수성구야 질 줄 알고 갔다지만, 경기도지사 선거는 유시민과 민주당 김진효 후보가 단일화를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선배인 김문수 지사에게 패배했다. 그는 참여정부 때 연정론 관철 및 개헌이라는 엄청난 프로젝트를 도맡아 했지만, 결국 하나도 이루지 못했다. 통합진보당에 입당한 이후에도 행운의 여신은 그와 함께하지 않았다. 결국 통합진보당 부정 경선 사건 이후 그가 마지막으로 잡았던 동앗줄마저도 부스러져 버렸다. 아마도 정치인으로서 유시민의 선택지는 많지 않아보였다. 

그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2003년 유시민은 4.24 재보궐 선거로 처음으로 국회의원이 된다. 그는 뺏지를 달자마자 흰색 면바지를 입고 국회 본회의에 출석했다. 그가 연단에 올라가자, 국회의원들은 그에게 야유를 퍼부었다. “도대체 뭐하는 짓이야?” “국회의원이 장난이야?” “너 어디서 왔어?” 등의 목소리도 생생하게 들렸다. 그러나 유시민은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집단으로 국회에서 퇴장했다. 그 강단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동료 의원들은 그를 “옳은 말을 하면서 어쩌면 그렇게 네가지 없게 할 수 있느냐”고 논평했다. 나는 유시민의 강연 동영상을 거의 찾아보았고, 또 서울대 강연은 직접 듣기도 했는데, 그가 스스로 저 에피소드를 말하는 것을 여러 번 들었다. 사람들이 말하고자 하는 뽀인트는 아마 “네가지”였을텐데, 유시민 스스로는 “네 가지 없지만 옳은 말이다”라고 생각했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던 유시민이, 요즘 많이 부드러워졌다. 스스로 어떤 비판을 받고 있는지를 너무 잘 알고 있고, 그걸 의식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유시민 부드러워졌는데, 왜 정치적으로 자꾸 어려워질까?”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겠다. 내 생각은 오히려 반대다. 

김진애 의원이 말하는 “야썽”이라는 게 있다. 내가 유시민을 좋아했던 이유는 호랑이 발톱같은 그 날카로움 때문이었다. 서울대 쁘락치 사건때 “아, 신발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냐”는 눈빛으로 카메라를 야려보던 그 배짱, 감옥에서 참고문헌 하나 없이 항소이유서를 썼던 그 지성, 백분토론 진행을 하면서 사회자인 주제에 “저는 이 입장인데요”라고 말하는 위엄, 그리고 탄핵 때 울면서 노무현을 지키려고 했던 의리 등. 그는 “살아있네!”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그런 야썽 덕분에 나도 그를 좋아했고, 그의 팬들도 많아졌다. 

보건복지부 장관 인사청문회때를 기억하는가. 갑자기 금테안경 쓰고 나와서 다소곳하게 인사청문회에 임하던 유시민의 태도를 잊을 수 없다. 내가 아는 유시민이 아닌 것 같았다. 어쩌면 일개 정치인에게 죽지 않는 야썽을 바라는 것이 무리일 수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리고 나는 유시민이 보건복지부 장관직을 잘 수행하고 있다는 소문을 듣는 것만으로 분을 삭혀야 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나 혼자가 아니었다. 보건복지부 장관 이후 유시민의 정치적 행보는, 뭔가 순수하다기보다는 향후 몇 년을 두고 바둑을 두는 느낌이었다. 일단 지역주의 극복의 이미지를 주어야 하니 대구에서 출마한다. 낙선한다. 진중권은 촛불집회 매일 나가서 시위하고 있을 때(나중에 진중권 교수에 대해서 쓸 날도 있을 것이다), 그는 경북대에서 경제학 강의 하고 있었다. 정권 초기, 한반도가 촛불로 들끓고 있을 때, 유시민은 조용해도 너~무 조용했다. 

그 때부터 나는 유시민의 계산을 읽으려 노력했다. 바둑에서 정석을 두는 것처럼 의도가 너무 명징했다. 정권바뀜과 동시에 대구에서 한번 낙선하고 조용히 있다가, 대선정국이 되면 다시 경기도/서울로 입성한다는 전략이었다. 아마 나보다 훨씬 정치에 관심없는 사람도 그 정도는 눈치챘을 것이다. 사람들에게 유시민의 수가 다 읽히고 있다는 것을 아마 스스로만 모르는 것 같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적어도 나는 그에게 야썽을 기대했고, 그의 야썽은 2008년 이후에 한번도 나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그 야썽을 이어받은 사람은 김어준과 주진우, 그리고 정봉주라고 나는 생각한다. 두말할 나위없이, 사람들의 시선은 야썽을 가진 사람들을 향하게 되어있다. 

그러나, 이 시대에 또 유시민 만한 사람이 얼마나 되냐 하고 묻는다면, "거의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여전히 그는 명망있는 지식인이자, 이름 있는 정치가이다. 오늘 그가 정치를 그만둔다는 뉘앙스의 트위터를 올렸을 때, 안타까웠다. 이 글에서 유시민에 대한 이런저런 불평을 조금 했지만, 그는 여전히 소중한 야권의 자원이다. 보건복지부 장관을 그만둔지 5년이 지났어도, 웬만한 보건통계는 외우고 다니고, 그걸 기반으로 대중강연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몇 명이나 될까? 또 그런 사람이 국가론과 경제학 입문서를 써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정치인으로서나 지식인으로서 단연, 독보적이다. 그래서 더 아쉽다. 

59년 7월생, 그는 아직 젋고 가능성이 무한하다고 나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