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가끔문화예술평론/서평

<태백산맥> 영문제목 제안:"Forbidden story of people in deep mountain"

<태백산맥> 영문 제목에 관한 포스팅입니다. 댓글로 하면 너무 길어질 것 같아 제 블로그로 여러분을 모신 점 양해해주십시오. 티스토리의 에디팅 환경이 생각보다 좋지가 않네요. 편집이 이상한 점도 양해 부탁드립니다. 

<태백산맥>의 영문제목을 정한다고 한다. 우리의 위대한 소설작품이 해외로 수출된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값어치 있는 일이라 믿는다. 이미 지난 글 


2012/08/03 - [예술작품 이야기/서평] - <인물과 사상> (1998:10) 한 고등학생의 태백산맥 읽기


에서 보여드렸듯이, 나는 <태백산맥>이라는 작품에 대해서 상당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 이 작품에 대한 소회나 다른 모든 것들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지만, 이 글에서는 영문제목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기로 한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미 제목은 Taebaek Sanmaeck[태백산맥]이라고 정해졌고, 지금은 부제를 공모하는 중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이 글은 소설, <태백산맥>의 영문 부제에 관한 글이다. 


Taebaek Sanmaeck이라는 제목에 대해서도 한 마디만 코멘트한다. 한국인에게 태백산맥은 굉장히 의미심자하지만, 세계적으로는 그렇지 못할 것이다. <태백산맥>을 번역하는 이유가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 작품을 알리기 위해서라면 사실 제목 자체를 바꾸는 것도 고려해보아야 할 것이다. 다만, 집행진도 여러 생각을 하면서 제목을 정했을 것이라는 생각은 든다. 아마도 태백산맥의 원제목을 살리면서, 부제에서 좀 더 책에 대한 설명을 덧붙이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을 것 같다. 


한가지만 더 덧붙인다. 기왕 영문 제목을 정할 바에는 가장 좋은 제목을 선정하는 것이 목적이므로 이미 나왔던 제목들에 대한 몇 가지 평가를 곁들일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양해를 구하고 싶다. 물론 내 의견이 최선이 아니므로, 다른 분께서 제 의견에 대한 코멘트나 비판을 남기셔도 좋다는 말씀을 같이 올린다.(일면식도 없는 낯선 타인의 제목에 왈가왈부한다는 것이 죄송스럽기는 하지만, 더 나은 제목선정을 위한 과정이라고 이해해주시면 좋겠다.)


먼저 두루뭉실하게 키워드 중심으로 살펴보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제목은 "The Great Mountains"라는 제목이다. 이 제목은 mountains라는 키워드가 매력적이다. <태백산맥>은 산이 아니라 산들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원제목이 아니라 부제로 하기에는 너무 키워드가 적다. 이 제목만 들으면 사람들은 거대한 산을 암벽등반하는 이야기인 줄 알 것 같다. 산은 중요한 메타포이지만, 그것이 부제의 전부가 되어서는 안된다. 


잊혀진 혁명가의 이야기(The story of forgotten revolutionaries)라는 제목도 있었다. 이 제목에서 좋은 키워드는 story였다. 무엇보다 <태백산맥>은 이념소설이 아니라 이야기소설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그런데 revolutionaries라는 키워드는 마음에 걸린다. 서양에서 보면, 본격 혁명소설처럼 이해할 것 같다. 조정래 작가는 이미 소설을 쓸 때부터 국가보안법을 염두에 두고, "좌익과 우익을 똑같이 배치했다"고 밝힌 바 있다. 왜냐하면 이것은 좌익이나 우익의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left, revolution, Partizan 등의 키워드는 이 소설을 왜곡하는 사람들이 주로 이해하는 방식으로 외국인들을 오해시킬 소지가 있다. 


이념지향이 아니라는 점은 <태백산맥>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며, 


<녹슬은 해방구>(권은상)과 같은 본격 이데올로기 작품들과 


<태백산맥>을 구분짓는 지점이기도 하다. 


한국 빨치산(Korean Partizan)이라는 키워드도 마찬가지 이유에서 걸린다. <태백산맥>에는 온갖 인간 군상들이 모두 모여서 만들어내는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표현이 가장 적합하다. "It's only in humanity"라는 문장을 제안한 분이 계셨는데, 이 키워드는 감상문의 제목으로 적합할지 모르지만, 책 제목으로는 2% 부족하다.


우리가 <메멘토>라는 영화의 제목을 지으면서,


"모든 기억은 허구다"라는 문장을 만들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책의 제목은 내용을 모두 이해한 결과여도 안 되고, 내용을 전혀 알 수 없게 만들어도 안 된다. 


"벌교"를 제목에 넣자는 분도 계신다. 만약 <태백산맥>이 해외에서도 유명해지면, 벌교가 관광명소가 되지 않겠느냐는 말씀도 하셨다. 취지는 좋지만, 책의 제목은 책을 위해서 지어져야지, 벌교를 위해서 지어져서는 안 될 것 같다.


어떤 친구가 "깊은 산 속의 기억들: memories in deep mountain"이라는 제목을 제안했다.기억memories이라는 키워드는 약간 식상한데 deep이라는 키워드가 마음에 든다. 많은 이야기가 깊은 산 속에서 일어났다. 


지금까지 논의를 통해서 나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키워드를 도출했다. 


사고의 중간과정은 모두 생략하고, 먼저 결론만 제시한다. 


"Forbidden story of people in deep mountain"


적어도 내 해석에 따르면 <태백산맥>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사람들(people)과 산(mountain)라고 생각해서 여러 조합을 생각해보았다. 처음에는 잊혀진(forgotten)으 주된 키워드로 넣으려고 하였으나, 조금 더 강한 임팩트를 주려면 "금지된forbidden"이라는 수식어를 주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도대체 이 이야기는 왜 금지되었을까, 하는 궁금증과 긴장을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북한의 복잡한 이데올로기 상황, 그리고 국가보안법 등의 소설의 등장배경에 대한 단초를 제시하는 효과도 있다.

 

한국이나, 장소를 지칭하는 고유명사를 사용할 것인지도 생각해보았으나, 원 제목의 <태백산맥>이라는 영어 표기 하나만으로도 외국인들에게는 충분히 어려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세보기



* 물론 여기까지는 내 의견일 뿐이다. 내가 이렇게 길게 의견을 제시한 것은 다른 사람의 가안과 비교해서 내 안이 가지는 특징과 느낌을 정확하게 설명해두어야 다음 의견을 제시할 사람이 더 편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