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강사킴/경제지리학2012

대공황의 전개: a brief History

대공황 

1929년 심각한 경제위기. 국가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략 1930년 후반부터 1940년대 초반까지 지속됨. 20세기에 가장 긴 기간에 지속되고, 넓은 지역에 영향을 미친 불황임. 

21세기에도, 대공황은 세계경제가 얼마나 나빠질 수 있었는지 보여줌. 1929. 9. 4. 증권가격의 폭락, 10. 29 증권시장 폭락(검은 화요일). 모든 국가에 파급효과. 

대공황은 부국/빈국 모두에 영향. 개인소득, 조세소득, 이윤, 물가 하락하고 50%이상의 무역이 줄어듦. 미국의 실업률은 25%, 어떤 국가에서는 33%까지 올라감. 

특히 중공업에 의존하던 세계 거의 모든 도시들의 타격이 컸음. 건설업 수직 하락. 농업과 촌락지역은 곡물가격 하락(60%)로 고통받음.

1930년대에는 일부 지역에서 회복세가 나타남. 대부분 국가에서 대공황으로부터 2차대전 시작까지 부정적인 영향을 받았음. 

대공황의 시작

경제사가들은 대공황을 미국의 증시붕괴를 공황의 시작으로 보는 경향이 있음. 논란이 있지만, 증시붕괴는 대공황의 이유라기보다는 "징후"로 보는 것이 타당. 

1929년 월스트리트 붕괴 이후, 낙관주의가 있었음. 록펠러는 "상황이 좋지 않다. 내 인생 93년동안 공황은 수없이 지나왔다. 곧 번영이 다시 시작될 것"이라고 말함. 증시는 1930년대 초반에 1929년 초반 수준으로 돌아옴. 

이와 함께, 정부와 기업은 1930년대보다 더 많은 투자. 반대로 대게 주식시장에서 많은 손실을 입었던 투자자들은 소비를 10% 이상 줄였음. 마찬가지로 1930년 중반부터 미국 농업 중심부에서 심각한 가뭄이 찾아옴. 

1930년 중반 이래로, 이자율은 떨어졌지만, 소비자 지출과 투자도 떨어짐. 1930년 5월, 자동차 판매가 1928년 수준 이하로 줄어듦. 1931년 본격적으로 공황에 들어감. 

미국의 위기는 다른 나라에도 부정정 영향을 미침. 이 때 나타난 보호무역주의들이 나타났는데, 이것은 오히려 국제무역(global trade)의 붕괴를 가져옴. 

원인

1929년 공황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음. 먼저 은행의 부실 문제가 지적됨. 자유주의 경제학자(Milton Friedman, Peter Temin)은 미국 연방준비 이사회의 통화 공급의 문제와 영국의 금본위제 복귀를 지적하였음. 

경기 순환은 세계적 수요와 공급의 정상적인 부분으로 간주됨. "정상적" 경기주기를 불황으로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논재의 대상이 되었음. 정확한 원인에 대해서 학자들은 아직 합의를 내지 못했음. 

자유시장의 실패인가, 이자율조정이라는 정부역할의 실패인가, 은행의 실패인지, 통화공급의 실패인지, 아직 의견이 분분함. 국가의 역하을 믿는 축은 자유시장의 실패라고 믿고, 작은 정부를 주장하는 사람은 주된 원인이 정부실패라고 주장. 

케인즈주의 경제학
제도주의 경제학(과소소비, 과잉투자, 버블)
통화주의자: 치명적인 정책실패(연준위 Federal Reserve)
: 루즈벨트의 뉴딜정책

* 부채 디플레이션

어빙 피셔: 대공황은 과잉부채, 물가하락 때문이라고 주장. 과잉부채에 대한 느슨한 신용으로 인해서 투기와 자산버블이 발생. 부채와 물가하락과 상호작용하는 9가지 원인. 

1. 부채 유동성(debt liquidation)
2. 은행부채가 지불되면서 통화공급이 축소
3. 자산가격하락
4. 기업 순이익의 하락, 부도
5. 이윤폭락
6. 무역, 고용 산출 감소
7. 신뢰 붕괴, 비관주의 
8. 화폐 축장
9. 명목이자율 하락, 조정이자율 상승. 

은행의 실패, 정부정책 효과 없음. 은행 744개 부도. 1933년 7십억 달러가 부도은행에 묶여 있었음. 은행 실패는 눈덩이처럼 불어남. 자본투자 줄어들고, 건설 경색. 

핵심원인: 20년대 통화의 과잉공급, 자본재, 자산가격(증권과 채권)의 지속불가능한 활성화(boom) 때문이라고 함. 1929년 이전의 정부정책 개입이 공황의 주된 원인(Rothbard) 

Marxism: 생산관계와 생산력발전의 모순으로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공황이 발생. 이 기간에 계급갈등과 사회변화가 가속화됨. 


결국, 회복은 2차대전을 통해서 이루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