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가서 가장 즐거웠던 순간 중 하나는 파키스탄 훈자에서 매일 같이 밤 새도록 수다 떨던 일. 한국인 여섯명이 모여 온갖 주제에 대해서, 온갖 사람에 대해서, 온갖 노래와 미술, 영화, 책, 음악에 대해서 이야기하던 그 때 (하루끼와 한비야는 여행자들의 단골 노가리 메뉴).
모르는 사람과도 밤새 얘기하다보면 그 사람의 어린 시절부터 가치관, 트라우마까지 꽤 진지한 내면 이야기들을 듣게 된다. 멤버가 바뀌면 또 그 사람의 이야기가 왜곡되고 비틀어지고 전달되면서 새로운 내러티브가 진행되고 급기야 오해와 질투, 시기로 갈라서기도 한다. 누군가는 누군가의 오해를 풀기위해 몇 백 킬로미터의 일정을 돌리기도 했다.
한국에 와서도 그 사람들 꽤 만났다. 그런데 한국에서 우리는 돌아가야 할 집이 있었고, 공짜로 무한대로 주어지던 시간이 없었으며, 무엇보다 서로의 계급이 명확하게 인식되기 시작했다. 17개 직업을 가진 멋진 형님은 사실 늙은 남자 백수에 불과했고, 파키스탄 친구들이 한국까지 보내는 문자는 이내 귀찮아졌다. 멋쟁이 요리사 친구는 아예 페루에 정착해버렸고, 부자집 아가씨들은 좋은 직장에 일찍이 취직해서 만나기 힘든 사람들이 되었다. 아니, 어찌됐든 한국에서 그런 여행공동체와 같은 유대감은 쉽게 얻지 못했다. 그게 나 때문인지, 도시 때문인지, 자본주의 때문인지 생각해봤다.
게오르그 루카치는 총체성의 상실을 말하는데, 자본주의가 인간을 사물화시키기 때문에 진정한 유대는 오직 문학에서만 일시적으로 가능하다 했던가. 잘 생각은 안 나지만 98년 고2 논술을 쓰면서 우리나라에서 드라마가 인기 있는 것은 그 안의 인물들이 촘촘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던 기억이 났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도시 생활이란, 나
자신을 소외시키는 요인들로 가득한 것 같다. 도시는
본질적인 불안을 해결해주지 못하는, 아니
오히려 그 불안의 에너지를 먹고 달리는 기관차 같다. 정지한
상태에서 발생한 불안은 이동하면서 누그러들고 그 사이로 연대가 틈입한다.
느슨한 여행자의 연대는 나름의 윤리가 있었다. 여행이란
광활한 공간에서 놀랍도록 작은 사회를 만들기 때문이다. 아프가니스탄, 이란, 터키로
여행하던 모든 여행자들은 중간에 모였다 흩어졌다를 반복했다. 어차피
사람이 가는 길이 뻔하므로.
그러나 한가지 확실한 점은 여행은 언젠가 분명히 끝난다는 것. 그리고 여행자사회가 우리를 얼마나 안락하게 해줬는지와 상관없이, 우리는 다시 임노동 체계로 들어가 소외를 친구삼아 살아야 한다는 것. 그런데 또 재밌는 점은 나는 내가 지독하게 여행자 사회를 그리워하는 줄 알았는데 또 그게 아니었다. 그립긴 하되, 그렇게 됨으로써 행복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아는 것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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