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거리를 걸을 때, 갑작스레 옛 기억이 떠올라서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대부분 위험한 기억이다. 다시 떠올리는 게 불순하고, 누군가에게 미안하고 그런 종류의 기억. 다들 하나씩은 가지고 있겠지. 그런 기억일수록 더 달콤하다. 돌아갈 수 없다는 게 묘한 로망을 만들어준다. 손대면 그 로망이 깨져버릴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끊임없이 갈망한다.
담배를 입에 댄다면, 어떤 느낌일까? 다시 메케하고, 입안이 바싹바싹 마르고, 어쩌다 가슴이 조이듯 아파오고, 자기 전까지 물고 자겠지. 나는 담배가 아무리 몸에 나빠도, 몸에 나쁘다는 이유로 끊을 생각은 없었다. 일단 우리 할아버지도 일평생 담배를 태우시다가 60이 다 되어서 겨우 끊으셨는데, 여든이 넘도록 건강하게 살다 가셨다. 아버지나 작은아버지 등 아직 담배를 피우심에도 불구하고 건강(?) 하게 지내신다. 담배를 피워서 불행해졌다기 보다는, 담배를 잘 즐기는 사람이 주변에 많아서 그런 위험을 덜 느낀 것 같다. 누군가가 당신 몸을 위해서 담배를 끊으라고 한다면, 나는 절대 끊지 않았을 것이다. 유이를 위해서 담배를 끊으라고 한다면, 우리 아버지도 나만큼은 이기적이었노라고 말했을 것이다. 아니, 나는 적어도 유이와 같은 공간 안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않을만큼 신세대 아빠라고 얘기하고 싶었다.
이번 금연이 한 네번째 쯤 된다. 첫번째 금연은 아마도 군대에서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루도 안되서 담배를 피워버렸다. 싱거웠다. 두번째 금연은 제대하고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좀 비겁한 이야긴데, 당시 여자친구를 위해서 담배를 끊는다고 생각했다. 멋있게, 여자친구를 위해서 끊는다. 나는 내가 사람을 온전히 사랑할 수 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던 것 같다. 나는 여자친구를 위해서 담배를 끊을 마음이 없었을뿐만 아니라, 담배를 다시 피울 핑계로 그녀를 활용하기까지 했다. 금연을 하는 동안 지속적으로 그 여자친구에게 짜증을 냈다. 그러다보니, 급기야 여자친구가 담배를 사와서 다시 피워게 되었다. 그런 비슷한 상황은 그 뒤로도 한 두번은 더 있었던 것 같다.
누군가 나에게 말했다.
"우리 헤어지게 된다면, 평생 기억에 남을 거야. 담배 피울 때마다 떠오르겠지?"
그 말을 듣는 그 순간에도, 나는 본능적으로 그 말이 맞아떨어질 것임을 알았던 것 같다. 그리고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그녀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기억난다. 화를 냈다. 우리에게 헤어짐은 없다고. 적어도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였다. 또 담배를 끊겠다고 약속했다. 나는 그 때 애도의 금연법으로 담배를 끊고 싶었다.
애도의 금연법이란 담배를 끊는 일종의 의식이다. 줄담배를 피우면서 그동안 담배와 함께했던 추억들을 곱씹어보는 것이다. 실제로 이 방법은 소설가 김영하에게 직접 전수받은 비법이다. 지금도 인터넷 어딘가에는 김영하 강연회때 내가 "어떻게 담배를 끊었느냐"는 질문을 던지고, 김영하가 거기에 대답한 기록이 남아있다. 애도의 금연법으로 끊고 싶었다.
그녀는 성격이 급했다. 나를 위해 그것도 못하냐고, 빨리 끊으라고 했다. 나는 남은 담배를 다 피워야 한다고 했다. 강제로 그녀가 담배를 빼앗았다. 그러면서 자기가 피우겠다고 했다. 그걸 말리다가 또 실갱이가 붙었다. 그리고 담뱃불 하나가 그녀의 오른쪽 세번째 중지에 떨어졌다. 그녀는 비명을 질렀고, 담배피우는 사람은 한번쯤 경험하게 되는 작은 화상이 그녀에게 생겼다. 비록 내 잘못은 아니었지만, 그녀가 작은 화상을 입게 되자 웬지 모를 안도감이 들었다. 어쩌면 저 화상이 나중에 이 관계의 유일한 증거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 해에도 담배는 끊지 못했다. 오히려 그녀와 헤어진 이후, 담배를 피울 때는 그녀가 떠오르곤 했다. 하루에 최소한 20개비 이상 피우니까 20번 정도는 생각났던 것 같다. 이별이란 게 그런 것 같다. 상실. 아침에 눈 뜨면서, 뭔가가 없다는 부재감을 느끼면서 시작한다. 가볍게 담배를 한대 피우고, 집을 나서면서 애써 일상으로 돌아온 건강한 영혼이 된 척 해본다. 그리고 버스에 앉아 잠시 멍 때리는 동안 또 생각난다. 지운다. 생각난다. 지운다.
기억과 지겹도록 싸움을 하다보면, 어느 날부터는 완전히 생각도 나지 않는 그런 날이 생긴다. 그 날은 전혀 예기치 않게 찾아온다. 그리고 그 날이 지나가고 난 다음에서야 "아, 어제는 생각을 안했구나"라고 돌이켜보게 된다. 그런 날이 점점 잦아지고, 급기야 그토록 사랑했던 어떤 사람도 억지로 떠올리지 않으면 잘 생각도 나지 않는 상태가 된다. 그 이후로 다시 떠올리면 추억이 된다. 추억은 미련과 달라서 따뜻하다.
이별이 잘 되지 않을 때도 있다. 더 이상 만나서는 안 되는 사람에게 매달린다. 때로는 내가 매달리고, 때로는 상대가 매달린다. 다시 만나 잘 되는 케이스가 없는 건 아니지만, 대게의 경우 더 지저분한 꼴을 보게 된다. 이 쯤 되면, 지저분한 꼴을 보인게 아까워 또 매달리고, 헤어지고 메달리고, 헤어진다. 상흔은 깊어가고, 영혼은 망가진다. 시간이 지날수록 얼마나 자신이 찌질한지를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메케하고 중독성이 강한 담배연기처럼 그런 기억은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다. 다행이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지게 되었을 때에도 나는 담배를 끊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앞에서 직접 담배를 피우지는 않을 뿐더러, 살면서 누구든지 일정 정도의 담배연기를 맡고 살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그것이 내가 담배를 끊어야 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금연을 결심한 이유는 담배가 허구라는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담배는 허구다. 누군가는 니코틴이 부족해서 담배를 피운다고 한다. 니코틴이 부족해도 몸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냥 그 전에도 그 시간에 담배를 피웠기 때문에 기계처럼 담배에 손이 갈 뿐이다. 담배를 처음 피울 때는 뽕맞은 것처럼 정신이 몽롱해지는 느낌이 있다. 그것도 담배가 습관이 되어버리면, 아무 느낌도 나지 않는다. 그냥 목 주변이 타들어가는 그 느낌만 남을 뿐이다. 담배를 피우면서 한번도 목주변이 타들어가는 느낌때문에 담배를 피워야 한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렇다면, 담배를 피워야 할 모든 이유는 사실상 허구 아닌가? 주기적으로 담배를 피워야 하기 때문에 사후적으로 만들어낸 논리가 아니냐는 말이다. 습관의 노예가 되는 게 가장 무섭다. 그래서 끊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금연에 성공하기 위해서 딱 한가지만 나에게 필요했다. 예측가능성. 잠이 온다. 나른하다. 길거리에서 나는 담배연기가 역겹다. 목에 침이 고인다. 이런 변화는 담배를 끊기가 무섭게 바로 찾아온다. 금연이 시작된 것이다. 흡연을 하던 사람에게 금연이야 말로 중대한 사명이다. 때로는 무언가를 하는 것보다도 하지 않는 게 어렵다. 야외에서 기분 좋게 커피 한잔을 하고, 기름진 고기를 양껏 먹고, 기분좋게 글을 써내고 그 다음에 아무 것도 하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이 고통스럽다. 이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담배가 계속 떠오른다. 기억을 죽인다. 다시 떠오른다. 다시 죽인다. 그러다 보면 생각나지 않는 날도 하루쯤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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