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2005년 7월,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역구도를 타파하기 위해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을 제안하였다. 특히 7월 28일에는 “대연정이라면 당연히 한나라당이 주도하고 열린 우리당이 참여하는 대연정을 말하는 것”이라고 밝혀 사실상, 지역구도 타파를 위해서 자신의 권력을 한나라당에 이양할 뜻이 있음을 밝혔다
노무현의 대연정 제안(이하 ‘연정제안’)에 대한 사회 각계의 지식인들의 토론과 논쟁이 이어졌다는 사실은 시사적이다. 2005년 당시에는 연정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었고, 그 중에서도 독일의 연정 사례를 분석한 연구가 속속 등장하였다 (박명준, 2005; 박채복, 2005). 또한 지역주의 타파를 오랫동안 주장해왔던 강준만은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이었던 조기숙과 지상(紙上) 논쟁을 벌여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최장집은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의 개정판(2005)에서 노무현의 대연정 제안을 정면으로 비판하였고
연정제안에는 크게 세 가지 정도의 분석범주를 설정할 수 있다. 첫째, 노무현 전대통령의 통치스타일에 관한 범주이다. 이 문제는 사실상 연정제안에 관한 담론을 분석하는 중심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연정제안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단독으로 제안한 정치적 개념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대통령”의 의중은 현실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둘째, 노무현이 타파해야 한다고 주장한 한국의 ‘지역구도’ 문제의 본질에 대한 범주이다. 한국에서 지역주의는 오랫동안 한국정치를 가로막는 요소로 지적되어 왔으며, 특히 그 중에서도 전라도와 경상도의 갈등은 한국의 지역갈등에서 핵심적인 축이었다
첫번째 범주는 한국인의 정치문화라는 비공간적 측면에서 연정제안을 보는 반면, 연정제안의 목적과 담론의 분열양상으로 볼 때 두번째와 세번째 범주는 “한국 사회에서 지역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정치지리학의 문제로 회귀한다. 즉, 한국 사회에서 지역이라는 말의 의미는 어떻게 형성되었으며, 연정제안에서 노무현이 언급했던 ‘지역구도’는 기존에 한국사회의 병폐로 지적되어 왔던 ‘지역갈등’, 혹은 ‘지역주의’와 같은 의미인가? 그리고 방법론의 차원에서 “한국 사회에서 지역구도를 타파하기 위해서 선거구제의 개편은 필수적인 사안인가?”라는 질문도 제기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지역구도 타파와 선거구제 개편이 모두 이루어진다는 확신이 있다면, 연정제안은 타당한가?”라는 질문도 제기할 수 있다. 하지만, 연정제안은 2005년의 해프닝으로 끝난 만큼 연정제안 자체의 타당성을 논하는 것보다는 연정제안 속에 들어있던 지역에 대한 인식론의 차이를 살펴보는 것이 더 생산적이다. 또한 이러한 인식론적인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인간이 현상을 인지하고 지각하는 현상에 대한 문제의식도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주장을 바탕으로 본 논문은 2005년 7월부터 9월까지 있었던 대연정에 대한 지식인들의 담론을 분석하여, 이들의 지역 개념이 각각 어떤 함의를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을 목표로 한다. 2장에서는 ‘지역에 대한 인식론’이 어떤 틀에서 해석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선행연구들을 살펴본다. 3장에서는 2장의 논의를 바탕으로 연정제안의 배경을 살펴본다. 4장에서는 2장의 이론틀과 3장의 맥락을 바탕으로 대연정을 둘러싼 논쟁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이를 특징지울 수 있는 개념을 도출한다. 5장에서는 4장까지의 논의를 간단히 정리하고, 연정제안에서 등장한 지역개념적 함의에 대해서 간단하게 설명한다.
2. 이론적 배경
A. 지역에 대한 이론
지역(Region)은 수많은 학문분과에서 각각 다르게 정의하고 있기 때문에 어느 하나의 통일된 개념으로 제시하기 곤란하다
한국사회에서 지역이라는 개념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해볼 수 있다. 먼저, ‘지역’이라는 개념이 단독으로 쓰이는 경우이다. 이 경우 지역(region)은 비도시적인 공간을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낙후지역”, “지역사회”에서의 ‘지역’은 단순히 어떠한 공간적 범위를 상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비도시공간이라는 의미를 포함하게 된다. 둘째, ‘갈등’, ‘구도’ 등과 결합할 경우 지역은 매우 정치적 의미를 담게 된다. 가령, 한국의 지역주의 문제는 지역구도, 지역갈등, 지역차별, 지역감정 등의 다양한 단어로 묘사되는데, 사용되는 단어는 매우 다양하지만 여기에서 나타나는 지역개념은 영호남의 구분을 의미한다
연정제안과 관련하여 지역의 개념에 대해서 또 한가지 특이한 점은 노무현을 비롯한 연정론자들은 “지역구도”라는 용어를 선호했다는 점이다. 지역주의에 대한 용어는 지역갈등, 지역감정, 지역 연고주의, 지역패권주의, 그리고 지역의식 등 다양한 용어가 사용되어 왔으나, ‘지역구도’라는 개념은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언론재단사이트(www.kinds.or.kr)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2001년과 2002년에 신문 제목에 “지역구도”가 포함된 건수는 각각 17건과 36건이 검색되었는데, 여기에는 “지역구” 등 유사검색어가 따라오기 때문에 일정 정도의 허수가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2003년 이전 지역구도라는 단어가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는 것이 확인되는 셈이다. 그런데 노무현은 2001년, 혹은 그 이전부터 유독 지역구도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해왔다
B. 지역주의 논의에 대한 탈근대적 접근
지역주의에 대한 논의는 여타의 모든 논의가 그러하듯, 그것이 ‘이미 주어진 것’(pre-given)인지, 혹은 사회적으로 형성된(constructed) 것인지가 중요한 논의 대상이 된다. 예를 들어, 지구화(Globalization)라는 정체가 상당히 불분명한 현상에 대해서 상당히 많은 연구들이 그것을 찬성 혹은 반대의 관점에서 서술하였다. 헬드
이러한 논의의 틀을 한국의 지역주의에 그대로 적용해보면, 지역주의에 대한 찬반론과 지역주의에 대한 서사적 접근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지역주의에 대한 찬성과 반대의 입장을 구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가령 최장집은 지역주의가 한국사회의 통폐합의 위기를 조성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한국은 비교적 동질적 문화적 조건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지역주의가 생산하는 정치적 배제와 소외가 매우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최장집, 1993). 한승주는 지역주의가 오래 지속되지 않을 것이며 민주주의의의 공고화를 위협할 정도로 심각한 상태는 아니라고 주장하였고, 조기숙도 장기적으로 한국의 민주화에 크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사회과학에서 이론(theory)가 아닌 담론(discourse)에 초점이 옮겨간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서구에서의 근대(modern)란 비교적 뿌리가 명확한 개념으로 인간의 이성과 합리성으로 세계를 지배할 수 있다는 낙관적 믿음에서 비롯된다. 이에 대한 사상적 뿌리는 넓게 거슬러 올라가면 플라톤에서 원형을 찾을 수 있으며, 역사적 근대의 출현과 함께 데카르트를 그 시발점으로 볼 수도 있다. 데카르트, 칸트, 헤겔로 이어지는 서구 관념론에서 인간의 본질은 이성으로 간주되었고, 이성을 가진 주체(subject)는 중세의 암흑으로부터 탈출한 탈주술화된 존재라는 점을 의심하지 않았다. 이와 반대 선상에서 근대와 계몽의 질서를 반대해왔던 니체, 후기의 하이데거, 아도르노와 같은 사상가들이 존재한다
탈근대의 원형으로 알려져 있는 이들 철학자들의 논의가 담론이라는 이슈로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된 데에는 푸코(Foucault)의 기여가 크다. 1970년대 알튀세 등의 구조주의자들이 주목하지 않았기 때문에 볼 수 없었던 담론의 문화적, 맥락적, 미시적 역사들이 1980년대 푸코를 통해서 조명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푸코의 사상은 포스트모던한 주장을 위한 창조력의 원천이었으므로 주목받을 만하다. 거기서는 권력과 지식의 관계가 핵심주제이다. 그러나 푸코는 권력이 궁극적으로 국가 내부에 자리잡는다는 주장을 배격한다. 그는 우리들로 하여금 ‘상항식 권력 분석’에 매달리도록 유도한다. 이는 곧 ‘나름대로의 역사와 고유한 발전경로, 고유한 기술과 기법을 지니기 마련인 권력의 미세한 메커니즘으로부터 출발하여 권력메커니즘이 보다 일반적인 메커니즘이나 범지구적인 지배형태에 의해 어떻게 의미를 얻고, 식민화되고, 활용되고, 원상태로 돌아가고, 전위되고, 확장되어 왔는지를 살피라’는 주문이다
하비는 푸코의 상향식 권력분석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제도적 권력과 담론이 분석의 주된 틀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포스트모더니티의 조건』의 후반부에서 탈근대성이란 1973년에 포디즘적 생산양식이 붕괴되고, 유연한 생산체계로 변화하는 물질적 변화상이 반영된 것이라고 결론짓는다. 하비와 푸코의 관점은 어느 한 관점이 다른 한 관점으로 완전하게 포섭되기 어려운 독자성을 가지는 주장이다. 지역주의를 하비의 방식으로 해석할 경우 기존의 한국인이 가진 문화적 특질이나 역사적 사건보다는 특정지역의 경제적 편익, 그리고 자본순환에 따른 건조환경(build environment) 조성 등이 중심이 되어야 할 것이다. 반면 푸코는 지역주의를 만들어내는 담론의 형성과정, 그리고 지역주의 담론의 기술과 기법 등이 중요한 이슈가 된다.
푸코의 사고에서 중요한 것은 미시적인 것들의 역사, 정치, 문화적인 요인의 움직임이기 때문에 이는 본질적으로 지리적 사고와 맞닿아있다. 지리학에서는 1960년대 이후 계량혁명의 영향으로 논리실증주의적인 연구가 부흥하였지만, 이전까지 지리학 내에서 주류는 지역지리학이었기 때문이다. 지역이란 실체로서 존재하는지의 여부도 이미 지리학 내에서 유명한 논쟁거리였다
3. 연정제안에 대한 논쟁
노무현은 7월 28일 여소야대의 구조와 지역주의 해소를 이유로 당시 경쟁하는 야당인 한나라당에 대연정을 제안하였다. 노무현은 2002년 대선후보 시절 때부터 지역구도 타파를 조건으로 야당과 동거정부를 추진할 의사가 있다고 밝혀왔다. 그가 제안했던 대연정은 야당인 한나라당에게 총리 지명권을 주겠다는 의미였다. 연정을 하면 한나라당이 지명한 인사를 총리에 임명하고, 헌법상 총리에게 부여된 각료제청권도 실질적으로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대연정 체제에서는 총리가 실질적으로 내각을 주도하게 되고 대통령은 이를 관리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하지만, 대연정에 대해서 모두가 침묵했던 것은 아니었다. 당시 노무현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유시민 의원과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이었던 조기숙은 대연정의 당위성을 역설하였고, 이에 대해서 많은 학자들도 논쟁에 가담하여 반대의사를 펼쳤다. 먼저 한국의 대표적인 정치학자는 그의 유명한 저서인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의 개정판에서 연정제안을 “다른 의도를 가진 정치적 알리바이”라고 규정했다
연정론과 관련해 부정적 국민여론을 거론하는 야당을 향해서 여론조사를 금과옥조처럼 여기지 말라는 훈계도 튀어 나온다. 아무도 여론조사를 금과옥조처럼 여기지 않는다. 다만 선지자의 논리로 헌신짝처럼 내팽겨쳐도 될만큼 ‘민심’이란 게 단순하고 가볍지 않다는 사실은 잊지 말자는 것이다. ‘똑똑한’ 유시민이 그런 사실을 모를 리 없다. 자신의 논리적 완결성에 집착하느라 정작 그 논리가 이바지해야 할 최종 목표에 대한 국민들의 부적절한 느낌과 불편한 심정을 애써 외면한 결과라고 나는 생각한다.
정치학자 최장집과 정신과의사 정혜신에 대해서 유시민은 자신의 홈페이지(www.usimin.net)에 ‘우리는 앙시앵 레짐의 자식입니다’라는 글을 통해서 연정제안의 진정한 의도를 다시 한번 설파하였다.
다른 한편에서는 강준만 교수와 조기숙 청와대 홍보수석의 지면 토론이 이어졌다. 논쟁의 발단은 2005년 9월 27일 한국일보의 고정칼럼에서 강준만 교수가 조기숙 청와대홍보수석에게 “학문을 소신을 버리지 말라”고 한 비판에 대해서 조기숙은 다음날 같은 신문에 “지역감정은 약화되었지만, 지역구도는 약화되지 않았다”는 요지의 반론을 제기하였다. 또 대표적인 방송토론프로그램인 MBC의 ‘백분토론’에서는 당시 한나라당 국회의원 김문수, 당시 민주노동당 국회의원 노회찬, 민주당 국회의원 이낙연이 연정 반대패널로 등장하여 유시민, 조기숙과 열띤 논쟁을 벌였다. 이 자리에서 유시민은 다시 한번 3김 체제의 불합리한 구조를 극복하고 선진국 정치문화를 만들자는 슬로건을 다시 한번 각인시켰다.
결과적으로 보면 연정제안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이 과정에서 지역주의 혹은 지역구도에 대한 토론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시사적이다. 첫째, 연정제안의 진정한 의도가 지역구도 타파라는 문제의식에 대한 인식 차이이다. 지식인이든 정치인이든, 자신의 생각과 소신을 모두 있는 그대로 발언할 것이라고 본고에서는 가정하지 않는다. 가령, 지역구도에 찬성하지 않아도 연정론을 공격하기 위해서 찬성한다고 발언할 가능성과 그 반대의 가능성을 모두 열어둔 상태에서 각자의 담론을 분석할 것이다. 둘째, 각 발언자에서의 지역에 대한 인식을 사회공간의 이론과 연동하여 이해하고자 한다. 물론 지역주의를 논하는 모든 논자들이 어떤 특정한 이론을 염두에 두지 않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주의에 대한 담론을 이론적 수준과 연결시키려는 시도는 지역담론이 국가적 수준의 이슈 일뿐만 아니라 세계적 수준에서의 분석을 가능하게 만들 가능성을 시사한다.
<표-1>
| 출생연도 | 전공 | 2005년 지위 | 출생지역 | 연정에 대한 입장 | 현재(2008년) 직업 |
유시민 | 1959년 | 경제학 | 국회의원 | 경남 경주 | 찬성 | |
조기숙 | 1959년 | 정치학 | 청와대홍보수석 | 경기 안양 | 찬성 | 대학교수 |
김문수 | 1951년 | 경영학 | 국회의원 | 대구 | 반대 | 경기도지사 |
노회찬 | 1956년 | 정치학 | 국회의원 | 부산 | 반대 | 진보신당대표 |
강준만 | 1956년 | 신문방송 | 대학교수 | 전남 목포 | 반대 | 대학교수 |
정혜신 | 1963년 | 의학 | 정신과의사 | 반대 | 정신과의사 | |
이낙연 | 1952년 | 법학 | 국회의원 | 전남 영광 | 반대 | 국회의원 |
4. 연정제안에서 지역주의 담론의 성격
노무현의 연정제안은 파격적이고 도박적인 수사학과 함께 이루어졌다. 그는 “임기단축”을 언급하기도 하였고, 필요에 따라서는 권력을 한나라당에게 이양할 수도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4] 따라서 그의 진짜 의도보다는 자극적인 언행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따라서 그의 핵심적 주장을 간단하게 요약하기 위해서는 다소 혼란스러운 잡음의 개입을 제거하는 작업이 필수적이다. 다행히도, 유시민은 노무현의 의중을 가장 잘 파악한다는 평가를 받아왔고, 연정국면 당시 활발하게 토론을 주고 받으며 대연정의 속 뜻을 설파하여왔다.
그가 최장집과 정혜신을 비판하기 위해서 쓴 “우리는 앙시앵 레짐의 자손입니다”라는 글과 백분토론에서 발언한 내용을 종합하면, 연정론의 총체는 다음과 같이 이해된다.(www.usimin.net)
가) 한국의 정치체제는 87년 직선제개헌 이후 지역구도를 유지하고 있다.
“내가 정치인으로서 하려고 하는 일은 아주 특별하고도 일시적인 과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나는 17대 국회의원 임기가 끝나기 전에, 1노 3김이 합의해 만든 ‘1987년 체제’를 종식하고 한국정치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데 필수적인 정치제도의 변경을 이루어내고 싶다.”
나) 지역구도는 분열을 촉진하며 나아가 한국의 정치발전을 가로막는 주범이다.
“정치적으로 볼 때 우리는 모두 병들어 있다. 우리 모두는 앙시앵 레짐의 자식이다. 대통령도 여당도 야당도 보수정당도 진보정당도 기업인도 노동조합도 국민도 모두 역사적 분열의 상처를 안은 채 정치적 분열의 열병을 앓고 있다. 양극화로 인한 사회적 분열마저도 서로를 공격하는 무기로 사용할 뿐, 함께 해결책을 찾으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
다) 지역구도의 원인은 거대정당의 구도와 선거제도에 있다.
“정당체제의 이념적 협애성이 지역주의의 위력을 키운 것이 아니라 지역주의적 정당구도와 거대정당에 압도적으로 유리한 선거제도가 한국 정당체제를 보수일색의 협애한 공간에 묶어둔 원인이요 제도적 환경으로 보는 것이 오히려 타당하지 않은가?”
라) 대연정 제안은 문화적으로 좌우통합정부를 형성한다는 상징적 의미와 선거제도 개편을 통해서 지역구도의 형성을 막는 실질적 의미를 모두 가지고 있다.
“연정을 하지 않고 선거구제 개편을 할 수 있으면 저도 좋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 방식을 선호합니다. 그러나 대통령은 그것도 좋지만 한나라당과 연정까지 하면 더 좋겠다, 하는 겁니다(백분토론, 2005-09-01).”
마) 따라서 지역구도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대연정 제안을 받아들여야 한다.
한국 지역주의에 대한 부정적 시선은 국내에서 오랫동안 문제가 되어 왔다. 대표적 연정론자인 노무현, 유시민 등은 오랫동안 지역주의 타파를 주장했다. 하지만, 지역주의가 궁극적 원인과 해법에 대해서는 서로 상이한 분석이 존재한다. 가)의 주장과 나)의 주장은 지역주의의 발생 시기과 정도(degree)의 문제이기 때문에 현상적인 인식론에서 차이를 제공할 뿐, 당위에는 영향을 미치기 힘든 주장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연정 반대론자의 주장은 다)와 라)에 대한 거부이다.
강준만과 조기숙의 지상논쟁의 핵심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 지식인이 정치권에서 지켜야 할 소신과 윤리의 문제이다. 강준만 교수는 한국일보의 칼럼에서 “이미 여러 권의 책을 통해 지역주의 낙관론을 역살한 지역주의 전문가인 조 수석님이 청와대 경력 때문에 자신의 학문적 소신을 뒤집어야 하는 사태”에 이르렀다면서 조기숙이 변했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이후 이어지는 윤평중과 김규항의 관련 칼럼의 주된 주제 역시 이 영역에 속한다. 둘째, 지역주의의 원인에 관한 문제이다. 강준만은 평소 지역주의에 대해서 낙관적인 견해를 보였던 조기숙의 입장이 바뀌었다고 비판하였다. 특히 대연정의 명분은 지역구도의 타파였기 때문에, 연정의 필요성을 강조하면 할수록 지역구도의 심각성을 과장하는 것은 당연한 논리적 수순이었다. 하지만 조기석 수석의 입장은 현 선거구제가 한국의 지역구도를 형성하고, 이것이 한국의 정치 발전을 가로막는다는 점이었다. 본고의 관심사는 둘째의 핵심에 치우쳐 있다. 지역주의의 문제의식에 대해서 조기숙은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주장을 제기한다.
저는 지역주의 선거가 지역감정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물론 지역감정이 완화되다보면 언젠가는 한 30-40년 후에는 완전히 사라지겠지요. 저는 지역구도는 지역에 기반을 둔 정당과 그것을 강화하는 선거제도 때문에 지속되므로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라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대통령은 한 번도 지역감정을 들먹인 적이 없습니다. 대통령이 문제 삼는 것은 지역구도입니다.(조기숙, 2005-09-22)
요컨대 연정론자들은 연정의 근거로서 “지역감정”이 아닌 “지역구도”에 명확한 무게중심을 두고 있는 것이다. 노무현이 후보시절부터 지역구도라는 단어를 적극적으로 사용해왔다는 사실은 이와 같은 지역구도에 대한 문제의식이 즉흥적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5] 노무현이 당선되기 이전부터 조기숙 역시 지역감정이 아닌 지역구도를 타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면, 이들의 주장은 상당한 일관성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고려되었다고 보아도 무리가 없다.
강준만도 한국의 대표적인 지역주의 전문가로 꼽힌다. 그는 한국의 언론이 얼마나 호남차별을 종용하고, 특히 정치인 김대중을 모함했는지를 실증적으로 밝힌 『김대중 죽이기』로 일약에 문제적 지식인으로 등극하였다. 이후 그는 단행본 『인물과 사상』 시리즈와 『월간 인물과 사상』을 통해 지역주의와 언론, 그리고 특히 지식인에 대해서 날카로운 비판을 수행하였다. 특히 그는 보수신문인 조선일보를 반대하는 안티조선운동으로 대안적 지식인으로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다가 2003년 민주당 분당 때, 그의 저서에서 『오버하는 사회』(2003)에서 신당창당을 비판한 후 정치에 관한 칼럼을 쓰지 않기로 결심하게 된다고 밝혔다. 2005년 대연정 당시 강준만은 이례적으로 노무현을 비롯한 연정론자들을 비판했다. 물론 주장의 대부분은 조기숙 개인적 신념에 관한 것이었지만, 지역주의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그간 수많은 연구자들이 지역주의 해소를 위한 방안들을 제시했습니다만, 노 대통령은 내내 그 방안들에 역행하는 일들을 하다가 다 안 되니까 대연정이라는 또 다른 답을 제시했지요. 측근 인사들은 그것 역시 답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지역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거나 약하다고 호통을 치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 강준만이 지역주의에 대해서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대연정이 지역주의 해소의 수단이 아니라는 점을 명백히 지적하고 있고, 반대편인 연정론자들의 독선적 태도를 지적하고 있다. 여타의 글에서 밝히고 있듯, 강준만은 적어도 표면적으로 지역주의의 타파를 꾸준히 주장해왔던 사람이었다. 여기까지의 논쟁을 살펴본 바에 따르면 강준만과 조기석의 논쟁은 목적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해결방법 차이라는 고전적인 수단과 목적의 딜레마에 해당하는 것처럼 보인다.
연정론자들은 ‘지역구도 타파’라는 거시적 목표를 내걸었고, 반대하는 사람들에게는 “지역구도 개혁에 찬성하지 않는다”고 원색적으로 비판했다.[6] 지역주의에 대한 연정론자들의 인식을 가장 잘 보여주는 단어는 “지역구도”이다. 즉, 조기숙이 언급했듯이, 지역에 관한 담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역구도를 부추기고 있는 선거제도”이다. 일반적으로 소선거구제는 각 선거구당 한 명의 후보자만을 선출하기 때문에 지역에 착근된(embedded) 선거전략과 연결된다고 알려져 있다. 유시민은 현행 선거구제의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국회의원 선거구제 개편론은 특정 지역에서 집중적인 지지를 받는 지역주의 정당과 중앙권력의 향배를 결정하는 거대정당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한 국회의원 선거구제를 정당에 대한 국민의 지지도와 그 정당의 국회 의석 점유비가 일치하는 선거구제로 바꾸자는 것이다. 열린우리당은 38%의 정당지지표를 얻고 51%의 의석을 차지했고, 한나라당은 36%의 정당지지표를 얻어 40%가 넘는 의석을 차지했다. 반면 민주노동당과 민주당은 각각 13%와 7%가 넘는 지지를 받고도 3% 수준의 의석밖에 얻지 못했다. 중대선거구가 되든 독일식 제도를 도입하든 그런 방향으로 선거구제를 변경하면 보수 양당의 의석 독점 구조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객관적 전망이다.(www.usimin.net)
연정론자들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선거구제를 통해서 바꿀 수 있는 것은 지역의 구도이지, 한국의 고질적인 병폐로 알려져 있는 지역주의가 아니다. 지역주의는 선거에서의 지역구도를 포함해서, 호남인에 대한 집단적 지역차별의 문제를 포함하는 좀 더 추상적인 개념이다. 더 나아가서 “지역”에 대한 문제를 논의 할 때, 연정론자들이 주장하는 내용은 지역”구도”, 즉 구조에 대한 문제이지, 지역주의가 포함하고 있는 감정적 박탈감, 지역간 대결의식 등 좀 더 구체적(concrete)한 문제에 대해서는 애초에 접근이 불가능하다거나, 시간을 두면 자연스럽게 해결된다는 문제의식으로 접근한다. 따라서 지역주의가 가지는 감정적이고 비공식적인 측면을 주로 분석해왔던 강준만의 분석틀과는 근본적인 차이를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이 논의를 철학사적 맥락으로 배치하면, 연정론자들의 논의는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지역구도가 없어지지 않는다는 식의 구조주의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공간 내에 이미 계급이 설정되어 있다는 하비의 논의와 매우 흡사한 지점이 있다.
공간적 시간적 실천들은 사회적 사안들에 대해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그것들은 항상 어떤 부류의 계급 또는 다른 사회적 내용을 표현하며 종종 사회적 투쟁의 초점이 된다. 우리가 공간과 시간이 어떻게 화폐와 연결되는지를 살펴볼 때, 그리고 자본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그러한 연결이 어떻게 훨씬 더 엄격하게 조직되는지를 살펴볼 때 이러한 사실은 이중적으로 명백해진다.
하비가 시간과 공간을 이해하는 기본틀은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범주에서 이루어진다. 즉, 화폐가 자본주의적 시공간과 접목되었을 때 현대 도시나 공간의 기본적인 운동방향을 설정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스미스
여기에서 제기되는 또 하나의 문제는 수단과 목적의 긴장이다. 즉, 지역구도 타파라는 거시적인 목표에 대해서 현실적으로 반대를 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것은 오랜 기간 동안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지적되어 왔던 지역주의라는 공공의 적에 대한 일종의 당위에 해당한다. 그런데, 그 방법론에 대해서 연정론자들은 구조주의가 아닌, 다시 낭만주의적인 이상을 제시한다.
나는 죽자고 한나라당을 미워했지만, 한나라당과 조중동만이 앙시앵 레짐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한다. 열린우리당을 포함해 정치인 유시민도 예외 없이 1987년 탄생한 구체제의 일부로서 존재하고 있다. 우리당은 대통령 탄핵안 표결을 육탄저지했다. 한나라당은 국가보안법 폐지법안 처리를 육탄저지했다. 민주노동당은 쌀 관세화 유예협정이나 비정규직 관련 법안 처리를 육탄저지한다. 자기가 찬성하는 법안은 ‘국회법에 따른 표결처리’를 주장하지만, 자기가 정말로 반대하는 법안은 육탄저지를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의 국회의원들이다. 대한민국 정치인과 정당들은 입으로만 국민의 뜻을 존중할 뿐, 선거에서 국민의 선택을 받은 다수파가 다수파의 권한을 행사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피아를 구분해 죽기 살기로 맞붙는 대결적 정치의 표상이다.(www.usimin.net)
“지역”이라는 담론에 대해서 구조주의적 입장을 취했던 연정론자들은 지역구도의 산물인 거대정당의 격돌에 대해서는 문제설정 자체를 비판하는 탈근대적인 입장을 취한다. 여기서 주목할만한 사실은 연정론의 반대편에 있었던 강준만도 지역구도가 아닌 한국현대사의 분열에 대해서 탈근대적 입장을 강력하게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그는 2006년 11월 4일 강남 교보문고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좌우는 명암과 같다. 더불어 공존하는 것이지 어느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지배하거나 제거할 수 없다. 그러나 한국의 지난 반세기는 자유, 정의, 인권 등이 통제 당해왔기 때문에 좌우갈등은 선악 2분법 구도에 갇히게 되었다. 세상이 많이 달라졌음에도 그 습속은 여전하다. 그로 인한 사회적 갈등 비용은 한국의 미래를 어둡게 만들고 있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유시민과 강준만 모두 한국사회에 드리워져 있는 짙은 이분법, 혹은 아와 피아의 투쟁에 대해서 강한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는 강준만의 주장처럼 “자유 인권 정의 등이 통제 당해왔기 때문에”, 혹은 유시민의 주장처럼, “앙시앵 레짐”이라는 이른바 3김체제때문인지는 좀 더 검토해볼 만한 소지가 다분하다. 극단적 이분법의 본류는 주로, 자연과 인간, 인간과 동물, 문명과 야만, 남성과 여성 등으로 나타나며 이는 우리 역사에만 특수하게 나타나는 특수한 현상이 아니라 서구에도 똑같이 나타나는 현상이며, 근대와 탈근대의 정점에서 주로 부각되는 주제이다. 그리고 푸코가 제기하는 통치성(governmentality)의 기초개념을 제시한 『감시와 처벌』에서는 인간의 역사가 합리적 진보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교묘하고 세밀한 통치의 세계로 들어온다는 주장을 미시적 역사서술을 통해서 보여준다.
이상의 논의에서 살펴본 것처럼 대연정론은 논리적으로 볼 때, 지역구도를 없애야 한다는 문제의식과 이분법 극복의 논리가 중첩되어 있었다. 전자의 경우, 연정론자의 지역구도란 기존에 한국을 고질적으로 괴롭히는 지역주의의 총체라기 보다는 선거에 의해서 심화되는 한국정치의 문제점을 치유하기 위한 수단으로 간주할 수 있다. 이 경우 지역에 대한 연정론자들의 인식은 구조의 반영(reflection)의 성격이 강하다. 이에 반해 최장집, 강준만 등은 지역주의를 총체적 문제로 인식하며, 지역구도란 지역주의의 반영으로 본다. 후자의 논의에서 유시민과 강준만은 모두 이분법에 따른 갈등문제를 한국의 역사적 경험에서 비롯된 특수한 문제로 인식하고 있지만, 사실상 이 문제는 오랫동안 철학적으로 심오하게 다루어졌던 문제이며, 특히 탈근대성과 관련하여 푸코의 문제의식과 상당부분 일치한다. 이분법에 대한 균열은 한국정치사라는 특수한 맥락 속에 위치하기도 하지만, 더 넓게는 탈근대라는 전역적(global) 조류의 일부라는 점은 이들의 논의가 결국 특수한 맥락성을 획득하기 어려움을 보여준다.
5. 결론
노무현 전대통령의 연정제안은 이제 더 이상 한국의 정치적 관심사의 밖에 위치해 있다. 2005년 9월 1일 MBC ‘백분토론’에서 한나라당 국회의원 김문수는 “지금 서민들은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다”며 연정은 국민의 핵심적인 관심사가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서 유시민은 “파블로프의 개처럼 경제, 경제 하지 말라”고 반박했다. 미국발 금융위기으로 인해 전 세계의 경제를 침체국면으로 치닫고 있는 현재의 시점에서 보면, 당시의 경제위기설은 연정론을 효과적으로 회피하기 위한 논리적 방어막으로 이용되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연정론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한국에서 지역주의, 혹은 지역구도의 담론이 정치적 이슈로 적극적으로 부각될 기회는 이제 진짜 “경제위기”에 부딪쳐 요원한 실정이다.
본고는 노무현을 비롯한 연정론자들의 지역주의 담론에서 “지역”이란 무슨 의미였는지, 그리고 그 이면의 사고를 철학적으로 재해석해보려는 시도였다. 정치지리학, 혹은 지리학에서 ‘지역’의 개념은 일률적으로 정의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하지만, 실제 한국에서 사용되는 ‘지역’개념은 ‘지역주의’ 혹은 ‘지역구도’의 틀에 속박되어 있었다. 그 중에서도 지역구도는 ‘지역’을 선거구제도 안에 머물러 있는 협소한 인식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개념이기 때문에 국가적 규모의 시각에서 ‘지역’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지에 대한 철학적 함의를 제시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특히 이러한 협소한 시각은 이른바 근대주의자가 주장하는 ‘구조’의 개념과 유사하며, 지역에 대한 보다 생산적인 논의를 차단하는 닫힌 개념이다.
다른 한 편으로, 연정론자들은 87년도 민주화투쟁 이후 양김체제가 한국사회의 극단적 분열을 낳는 가장 큰 원인이라고 주장하였다. 이와 비슷하게 강준만은 자유, 정의, 인권에 대한 탄압으로 인해서 한국에는 극단적인 이분법이 횡행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양자는, 연정론에서는 극단적인 찬반론자로 나뉘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이분법을 극복하고 대화와 소통이 가능한 사회를 구축하자는 다소 낭만적인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논의는 이미 서양의 근대철학에 대한 회의와 반발을 느낀 수많은 철학자들에 의해서 반성되어 왔고, 특히 그 중에서도 푸코의 저작은 주체와 근대에 대한 회의로부터 출발한다는 점에서 대표적이다. 근대적 사유의 전형적 양식인 이분법에 대한 비판은 현대철학에서 커다란 조류라고 할 수 있는 탈근대성 논쟁의 핵심이라고도 볼 수 있다.
결국 연정론에서 가장 핵심적인 두 부분은 서로 다른 철학적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이들은 한 편으로 “지역구도가 지역갈등을 부추긴다”는 입장으로 구조주의적 입장을 취한 반면, 다른 한 편으로는 “87년 이후 형성된 분열과 갈등의 역사를 치유하자”는 입장은 탈근대적 입장을 취했다. 따라서 연정론은 비록 많은 비판을 받았지만, 연정론을 완전히 부인할 근거는 되지 못했다. 이들은 지역구도의 문제가 모두 해결해야 한다는 규범적 논의와 다른 한편으로 분열과 갈등의 역사를 극복해야 한다는 낭만적 비전 사이를 오가면서 상대방의 반론을 차단해왔다. 연정론의 논리에 여러 문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2005년 연정논쟁은 한국 사회에서 ‘지역’ 혹은 ‘지역주의’에 대한 이슈가 전면으로 떠오를 수 있었던 좋은 기회가 되었다. 그러나 결국 연정론은 이내 격렬한 반대에 부딪쳐 정치적 이슈의 수면 아래로 자취를 감추었다. 경제 위기가 한국에도 먹구름을 계속 드리우고 있는 이상, 지역주의에 대한 이슈가 사회전면으로 부각되는 것은 가까운 미래에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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