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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라퍼

진중권에 대한 진보의 치졸한 비판들

곽노현 교육감 사건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8월 24일 무상급식 반대를 위한 주민투표가 무산되는 기쁨을 채 느끼기도 전에 곽교육감이 박명기 교수에게 후보시절 돈을 줬다는 혐의가 터졌다. 곧, 곽 교육감은 자신은 평소 친하던 친구를 위해 돈을 준 것뿐이고, 선거와는 상관이 없다고 해명했다. 곧이어 불꽃처럼 수사가 진행되었고, 검찰은 곽 교육감의 구속을 신청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곽 교육감의 의혹이 터져나온 것은 누가 봐도 이상한 시기였다. 오세훈을 이긴 죄로 곽 교육감을 누군가 단죄하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의혹은 세간의 추측일 뿐이었다. 이 사건이 터졌을 때만 해도, 선거가 무산된 기쁨에 만끽하고 있었던 진보세력은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을 것이다. 여기저기서 "도덕적 책임을 지고 사퇴하라"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곽 교육감의 비난 여론을 잠재운 것은 다름 아닌 나꼼수였다. 김어준은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에서 "자기가 진보진영의 지식인을 잘 안다"면서, "진보지식인은 비겁하다. 나중에 자기에게 피해가 돌아올 것을 걱정해서 곽교육감은 사퇴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고 했다. 그와 더불어 민주당 전 의원 정봉주는 "무죄추정의 원칙"을 운운하면서 곽 교육감을 옹호했다. 순간 여론이 무섭게 돌변했다. 아고라나 트위터, 그리고 기사 댓글 등에서 사람들이 곽 교육감을 미친 듯이 옹호하기 시작했다. 

더욱이 이른바 진보진영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잃었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곽 교육감이 제 2의 노무현이 되지 않을까 우려했던 것 같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검찰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결국 이 모든 것은 "각하의 꼼수"라는 환원론까지 등장하게 되었다.

처음에 진중권이 공격하고 싶었던 게 나꼼수였는지, 곽교육감 사태였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는 트위터에 "곽교육감을 옹호하며 대중을 선동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남긴다. 물론 김어준도 만만찮은 사람이다. 적어도 내가 알기로는 나꼼수에서 진중권이 언급된 적은 없었다. 김어준과 정봉주는 가고 싶은 대로 가는 사람들이었으므로, 적어도 나꼼수 내에서는 "곽교육감은 무죄"라는 것이 진리가 되었다.

무엇이든 돌풍이 불면 무섭다. 나꼼수 내에서 이제 함부로 방송내용을 비판했다가는 "각하의 알바"로 매도되거나, "병신"이 되거나, 아니면 "나가라"는 소리를 듣게 된다. 이런 현상을 일종의 귀여운 권력화라고 본다면, 진중권은 나꼼수의 권력화를 우려했던 것 같다. 또 한편으로는 곽교육감의 사태에 대해서 그의 선의를 믿더라도, 결국 잘못했다는 결론을 과감하게 제시한다.

진중권이 두려워서일까, 짜증나서일까? 수많은 논객과 인터넷 찌질이들이 진중권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진중권이야 워낙 공격을 많이 받는 사람이니까, 방어에도 능하다. 자기에게 보낸 인터넷 찌질이들의 글 중 가장 저열한 것을 공개하면서, "이게 애들 수준입니다"라고 하면 게임 셋이다. 개중에는 "진보분열주의자야, 꺼져라" 등 인신공격이 들어있다. 가끔 내가 진중권과 생각이 달라서 그를 공격하고 싶더라도, 그에게 트윗 멘션을 날리지는 않는다. 그가 내 멘션을 리트윗할까봐 겁나기 때문이다. 그걸 모르는 인터넷 찌질이들은 맹렬하게 진중권을 공격하고, 한방에 시원하게 당한다. 

다른 글은 몰라도, "진중권이 조선일보에 세뇌되었다"는 전북대 교수의 글에서 나는 진보의 한계를 보았다. 글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진중권은 조선일보에 세뇌되어 검찰의 입장에서 곽교육감의 사퇴를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진실공방은 워낙 뜨거우니 그냥 넘어가겠다. 노 전대통령의 말을 빌리자면, "이 정도면 막가자는 거지요?" 노 전 대통령의 이 말은 2003년 검사들과의 대화에서 한 검사가 굉장히 건방진 태도로 노 전대통령의 형 노건평에 대한 의혹을 제기한데 대한 대답이었다. 노건평이 잘못을 했을리 없으니, 곽교육감도 잘못했을 리 없다. 사람들은 "진중권=조선일보"라는 공식을 만들어내고 싶은 것이다. "세뇌"라는 표현 속에 정상적인 진보라면 저런 주장을 할 리 없다는 오만함과 독선도 보인다. 

진중권은 칸트적 입장에 서 있다. 나에게 정의인 것이 다른 사람에게 정의가 아니라면, 그것은 이미 정의가 아니라는 논법이다. 이 논법은 "정의란 상대적인 것이다"라고 주장하는 부류와 "검찰이 주장하는 것만 들으면 안된다. 진중권의 정의는 뭔가? 검찰인가?"라고 묻는 부류에 대한 답변인 것 같다. 진보세력은 진중권을 까면서 자신의 존재기반이 어떻게 훼손되는 지 잘 모르는 것 같다.

간단히 물어보자. 진보세력이 이명박을 비판하는 것이, 집권 못하는 서러움때문인가, 아니면 정의에 어긋나기 때문인가? 이른바 진보라고 하는 사람들이 이건희를 싫어하는 게 그가 부자이기 때문인가, 노조탄압을 하기 때문인가? 제 정신이 박힌 진보라면 둘 다 후자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 때 정의가 상대적이라고 인정하면, 자신들은 "많이 가지지 못해서 집권세력과 부자를 미워하는" 사람 밖에 되지 않는다. 그 원리를 간파한 우파는 항상 "부자를 미워하지 말라"고 좌파를 공격하지 않는가? 이른바 진보라는 사람들이 누구에게나 적용되어야 할 칸트적 정의를 부정하는 순간, 그 자신도 나락으로 떨어진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늘도 신나게 진중권을 씹어댄다.

정봉주 전 의원의 팬까페에서 이런 글을 썼더니, 바로 "너 돈 많이 받는 알바구나"라는 댓글부터 달렸다. 진보세력은 신지호가 술 먹고 방송한 것과 같은 바보짓을 조롱하면서도 자기 편에는 얼마나 많은 바보가 있는지 잘 모르는 것 같다. 적어도 내가 확신하는 것은 진중권은 바보가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다들 애국주의에 쩔어서 황우석과 심형래가 위대한 지식인이라고 떠들고 다닐 때에도, 진중권은 일관적으로 그들을 비판했다. 아주 재미있는 역사의 아이러니 하나. 그가 백분토론에서 디워를 혹독하게 공격하자, 네티즌들이 죽어라 진중권을 씹어대면서 오히려 관객수는 천정부지로 올라가 무려 500만을 돌파했다. 오죽하면, "심형래는 진중권에게 감사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왔을까? 진중권이 디워의 스토리구조가 데우스엑스마키나 수준이라는 식으로 비판했을 때, 상대편의 논리는 "우리 사회에서 심형래는 약자였다.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한심한 수준의 논리를 펴댔다. 결과적으로 토론은 진중권이 이겼지만, 그는 누구보다도 많은 욕을 먹었고, 디워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나는 진보가 아니다. 만약 내가 진중한 진보 지식인이라면, 말을 아끼겠다. 적어도 상식수준의 예측에서 곽교육감은 유죄를 선고받을 가능성이 커 보이고, 그 파장도 만만찮을 것이다. 만약 무죄가 선고되어서 그의 결백이 밝혀진다면, 진중권을 공격할 명분은 생기겠지만, 그를 공격해서 뭘 어쩌자는 말인가? 그 정력으로 이명박이나 비판했으면 좋겠다. 적어도 내가 아는 선에서 자기 겸임교수직 던지면서 이명박 비판한 사람은 흔치 않다. 그 중 한명이 진중권이다. 

정치는 바보대 더 바보의 싸움이라고 하는데, 학문하는 사람들의 논쟁 수준도 저질이다. 결국 진중권이 조선일보라고 말하는 것과 운동권은 빨갱이라고 말하는 것은 어떻게 다른가? 다른 건 몰라도, 전북대 박동천 교수는 "세뇌"라는 말을 쓰지 말았어야 했다. "세뇌"라는 말 한마디로, 진보지식인들의 토론도 결국 상대주의의 방패막을 가진 진흙탕 싸움이라는 것을 온천하에 드러내준 꼴 밖에 되지 않았다.

이 나라 진보에는 희망이 없다. Sh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