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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문화예술평론/인물평

김진애 편: 서울을 그려라!

김진애 전의원은 도시계획, 도시사회, 도시행정, 지리학 전공자들에게 서울을 그려보라고 했다. 여기 모인 분들은 그냥 전문가가 아니라, 한국의 도시정책을 직접적으로 보고 경험하신 고수들이다. 그리고 우리 모임은, 서울을 멋지게 비판해보자고 만든 일종의 소모임이었다. 그런데 정작 서울을 그려보라고 하니, 혹시나 나를 시킬까 다른 사람을 시킬까 걱정하는 눈치였다. 김진애 전의원에게 지목 당한 교수님께서 보드마카를 들고 화이트보드 앞에 . 먼저 교수님은 서울의 윤곽을 그렸다. 지웠다. 다시 그렸다. 완성된 그림은 흐물흐물한 불가사리처럼 생겼다. 내려오면서, 서울의 도시정책에 상당히 많은 기여를 하셨던 교수님도 서울을 개념화해서 그려볼 일이 없었노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무려 1년반동안이나 서울에 대해서 어떻게 연구할 것인지를 논하면서도, 우리는 서울이 무엇인지 "그려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김진애 전의원은 먼저 한강을 그리고 서울을 둘러싼 개의 산과 서울 안의 개의 (이른바 내사산과 외사산) 그렸다. 이렇게 보니 서울의 자연지리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계란 하나를 그린다. 그게 성곽이었다. 성곽안에는 청계천이 있다. 이게 성곽 안의 자연지리이다. 청계천 위쪽으로는 궁이 있다. 앞에 세종로라는 길을 하나 그린다. 이렇게 되면 구도심의 윤곽이 잡힌다. 이후 신촌과 용산 초기 부도심들이 발전하고, 지천을 중심으로 하여 대규모 개발이 시작된다(양재천, 안양천 ). 이후 맥락없이 고속도로와 고속터미널이 (!)하고 강남에 떨어진 이후 고속도로 주변의 강남은 바둑판 모양으로 개발된다. 말하자면, 강북은 계란모양의 성곽+알파이고, 강남은 바둑판이다.


이런 설명을 하면서, 김진애 전의원은 서울이 "" 닮았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가 "서울성"이라는 책에는 서울을 모양으로 그려놓은 개념도가 있었다. 도시행정, 도시계획, 사회학, 지리학 들의 최고 전문가들은 자리에서 입이 벌어졌다. 그녀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지만, 정작 그녀가 여러 책을 통해서 밝혔던 서울의 개념도에 대해서 생각해본 사람은 별로 없었던 것이다.

인권모임을 하면서 김원 건축가님을 만날 때도 느꼈는데, 건축을 전공하신 분들의 공간적 상상력이 놀랍다. 흔히 지리학을 "인간과 공간의 상호작용을 다루는 학문"이라고 말한다. 이런 개념으로 말하자면, 건축과 도시계획 모두가 "인간과 공간의 상호작용" 다룬다. 다만 인위적으로 구분을 하자면, 건축이 가장 미시적 공간에 대한 고민이라면, 도시계획은 보다는 넓은 공간 단위에서 사고하고, 지리학은 아예 지구적 수준/국가적 수준/지역적 수준을 나눠서 사고한다(참고로 김진애 전의원은 학부때 건축학을 전공하고, 유학가서는 도시계획을 전공했다). 지리학을 공부하면서도 자꾸 "그림" 멀어지는 것이 아쉽다. 2001년만 하더라도 지도학 시간에 끙끙거리면서 습자지에 지도를 옮겨 그리던 생각이 난다. 지금 지리학과 학생들은 손으로 지도를 그려본 적이 있을까?

공간적 상상력이란 남들이 그려준 지도를 때가 아니라, 자기만의 지도와 그림을 그릴 생겨나는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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