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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학자/역사문화

LBC 닥치고 연에에 등장한 소장님의 과학관에 대한 일종의 시비

오늘은 LBC 닥치고 연애를 듣으며 걸었다. 통계학 박사로 추정되는 소장님은 "남친과 정치색이 달라 고민이에요"라는 고민을 상담하면서 본인의 과학관을 살짝 드러냈다. 그의 과학관은, "과학이란 종교와 다르게 자신이 틀릴 수 있음을 가정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가 직접 인용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생각은 포퍼의 반증주의 과학관에 가깝다. 그리고 정치나 종교는 발전해도 그대로인데, 과학이 발전하면 우주에 신행성도 개척할 수 있다고 말한다. 어차피 애드립이 절반 이상인 코메디 프로라고 생각하면 그만인데, 그의 말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나도 맑스주의나 변증법을 공격하기 위해서 반증주의적 스탠스를 자주 취한다. 세미나 때도 여러번 말했지만, a라는 명징한 증거가 있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 두 경우 모두에서 맑스주의나 실재론은 어떠한 해석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a가 밝혀진 경우에 바뀔 수 있는 여지에 대해서 별로 고려하지 않는다(너무 짧게 서술해서 오해의 여지가 많지만). 그러나 과학은 그 a를 밝히기 위해서 굉장히 객관적이고 엄밀한 방법론들을 사용한다. 그래서 나는 과학을 좋아한다. 

그런데, 문제는 a가 없는 난제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FTA가 한국에 가져다줄 이익과 손실, 무상급식의 지속가능성, 심지어 이번 대선 결과의 원인(?) 등. 우리가 접하는 대게의 사안은 a이기도 하고, b이기도 하며, 때로는 부자에게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가난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기도 하고, 어떤 시기에는 의미가 있지만, 다른 시기에는 불필요한 그런 것들이다. 한 마디로 우리가 접하는 대부분의 문제는 a를 얻기 어렵고, 손에 잘 잡히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그것은 생각할 수 없는 것인가, 혹은 상대주의의 영역으로 남겨놔야 하는 것인가. 그러나 문제가 복잡하다고 해서 그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생존과 직결된 문제일수록 더 복잡하고, 답이 보이지 않는다. 주로 보수적 성향의 사람들은 "각자 생각이 다르므로 존중하자"고 말한다. 하지만 그런 문제를 생각하지 않으면, 않을수록 자신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일이 전개된다. 손해보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자본과 권력의 호구이다. 

과학의 본질이 반증가능성이라는 말은 좀 궁색하다. 과학은 헛된 신념을 가진 100명의 사람 중에서 우연찮게 과거의 이론을 뒤집은 좋은 신념을 만들어낸 1명의 혁명들에 의해서 발전해 왔다. 내가 알기로 과학자들은 지독한 고집쟁이들이며, 그런 고집들이 없었다면 과학이 이만큼 발전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물론 이런 점을 소장님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정치의 본질은 공약이고, 종교의 본질은 교리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보면 둘 다 별로 발전하지 않은 것처럼 보일 수 있겠다. 하지만, 지금 보통 한명의 성인이 한 개의 투표권으로 직접 투표해서 하루만에 결과를 낼 수 있는 대선 시스템은 분명 노예제보다 훌륭한 체제이다. 공약은 정치의 일부이지 정치의 전부는 아니다. 아마도 그는 큰 P(정치, 종교)는 작은 p(공약, 교리)에 대응한다고 보고, S(과학)에 대응하는 s(과학적 법칙)가 p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가 사용하는 전제들에 나는 동의할 수가 없었다. 

대게 이런 논쟁에서 과학이라고 하면 물리학을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생물과의 교감이 필요한 식물학, 동물학의 발전, 혹은 진화론의 발전을 생각해보면 포퍼의 반증주의가 맞아떨어지지 않는 구석도 많다. 모든 과학연구의 결과물이 명제형태로 깔끔하게 정리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공룡이 멸망한 이유 중 우리는 좀 더 타당한 이론을 고를 수는 있지만, 그게 100% 참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다. 이런 모든 것들을 생각해보면, 과거에 반증주의를 신념처럼 받들던 것이 부끄러워지기도 한다(물론 실증/반증주의 스탠스를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다). 

결과적으로 어떤 사람들이 과학에 대해 신념을 가지고 그것을 추구하는 것은 사회에 도움이 된다. 다만, 과학과 정치를 저울질하면서 과학이 더 낫다고 우기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