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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라퍼

강호동 평창 토지구입 욕할 시간에...

"누군가 중상모략을 한 것임에 틀림없다. 그가 무슨 특별한 잘못을 하지도 않았는데 어느날 갑자기 체포되었기 때문이다." 

프란츠 카프카 <소송> 중에서 


오늘 아침 뉴스에 따르면, 강호동은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 용산리 어느 땅을 구입했다. 그리고 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강호동의 소속사는 "투자를 목적으로 구입한 것이지, 투기를 한 것이 아니다"라고 항변했다. 

이것이 모든 뉴스의 시작과 끝이다. 그렇지 않아도, 강호동은 탈세의혹 때문에 이미지에 손상을 입어서 잠정은퇴까지 선언했다. 뉴스가 막 터졌을 때, 네티즌들은 거의 강호동을 맹렬하게 비난했다. 심지어 강호동을 동물에 비교하거나, 강호동을 "강호돈"이라고 부르면서 탐욕을 사람들은 마음껏 힐난했다. 

<한국 납세자 연맹>은 강호동에게 잘못이 없다고 했다. 강호동은 절세를 한 것이지 탈세를 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최근 <한국 납세자 연맹>은 무소불위의 권위를 가진 국세청 기관의 직원들을 업무상 기밀을 폭로한 혐의로 고소했다. 아마도 한국 역사상 국세청 직원들이 고소당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을 것이다.

여론은 무섭게 바뀌었다. 강호동을 향하던 대중의 날카로운 혀끝은 다시 정부를 향했다. 이제서야 나타난 직장인들은 "세금 내본 사람들은 다 안다. 세금도 안 내본 것들이 강호동을 탈세라고 욕하고 있다"면서 맹공을 펼쳤다. 직장생활해본 사람은 안다. 세금으로 내는 돈이 얼마나 아까운지. 사람들은 세금을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서 온갖 증명서와 카드내역서를 내는 일을 귀찮아하지 않고 한다. 그렇게 해야 내가 번 돈을 조금이라도 세금으로 덜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떻든, 여론은 다시 강호동의 편에 돌아온 듯했다. 

알수 없는 무서운 강풍이 또 강호동을 몰아친다. 알펜시아 근처에 땅을 샀다는 것이다. 해당 토지는 쉽게 말하자면, 일종의 그린벨트이다. 토지를 함부로 사고 팔 수 없게 되어 있는 땅이다. 다시 말하자면, 단기간에 강호동이 시세차익을 노릴 수는 없게 되어 있다. 하지만, 먼 훗날 규제가 풀리면 시세차익이 생길 수도 있다. 정확히 말하면, 강호동은 "시세차익을 위한 가능성"을 산 것이다. 


강호동이 매장되어야 끝나는 게임

한국사회가 정의에 목마르긴 한 것 같다. 사람들이 탈세와 절세의 차이를 고민하고, 투자와 투기를 고민하는 징후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호동으로 인해서 사람들이 개념의 혼돈을 겪을 것이라고 하는 것은 순진한 추측이다. 이 게임의 프레임은 탈세도 아니고, 절세도 아니며, 투자와 투기도 아닌 결국 "강호동"이다. 누군가가 그렇게 조작한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대중들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강호동을 매장시키는 게임에 참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강호동은 카프카의 <소송>에서처럼 어느날 갑자기 기소되었다. 대한민국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엠씨고, 한국 예능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갑자기 탈세범, 투기꾼이 되었다. 지금 대중은 어떤 변명을 해도 듣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대중이 모르는 것이 있다. 대중에게 그 날카로운 칼끝이 향하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익명성 안에 숨어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몰래 숨어서 저격수가 된 마냥 강호동에게 키보드 공격을 한다. 아무리 공격해도 자신은 초라해지고 강호동은 빛난다. 키보드 뒤에 숨어있는 익명의 대중을 위해서 아무도 "사회적 비난"을 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강호동을 싫어하는 대중은 역시 강호동 컴백의 찬란한 스토리 제작을 위해 봉사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강호동은 <무릎팍 도사>같은 프로에 나와 언젠가 화려하게 부활할 것이다. 내기를 해도 좋다. 
 

투기와 투자, 강호동은 가해자인가? 

다시 원론으로 돌아와보자. 투자와 투기의 차이는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결국 윤리적 영역이다. 투자와 투기는 겉으로는 전혀 구분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과감하게 말하자면, 이 둘의 차이는 "뉘앙스"이다. 투자(investment)는 좋은 말이고, 투기(speculation)은 나쁜 말이다. 그 이외의 차이는 모두 부수적이다. 

신고전파 경제학에 따르면, 투자와 투기는 구분되지 않는다. 아담 스미스의 주장처럼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봉사하는 것은 저절로 사회적 이득을 가져오기 때문"에 강호동의 투자행위는 무엇으로 규정하든 상관없다. 투기면 또 어떤가? 투기가 허락된 사회라면, 그대들도 투기꾼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나의 이런 유치한 문제제기에 혀를 내두를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은 이 "유치함"에 있다.

강호동의 토지매입 행위를 투기라고 비난하는 것은 유치하다. 강호동을 비난하는 사람과 강호동의 유일한 차이는 강호동은 부자고, 상대는 그렇지 않다는 것 뿐이다. 만약 강호동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돈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면, 그리고 토지매입이 절세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그래도 구입하지 않을 것인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투자하지 않는 것이 바보다. 그러므로 윤리적 바보가 되든지, 부자가 되든지, 그것은 그 위치에 가 있는 사람만 선택할 수 있는 문제이다.

토지거래가 바로 투기로 연결될 수 있는 사회에서 돈 많은 사람이 토지를 매입하지 않는 행위는 비효율적이다. 다시 말하면, 강호동은 체제에 적응한 선택을 한 것일 뿐이다. 토지에 대한 투기가 이렇게 자유롭게 성행하는 나라에 살고 있는 부자로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강호동을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짜로 생각을 해봐야 한다. 투기는 뭐고, 투자는 뭔가? 주식을 사는 행위와 토지를 사는 행위는 어떻게 다른가? 왜 알펜시아는 제대로 된 국제대회 규격도 갖추지 않는 리조트인데 이토록 투기열풍을 몰고 다니는가? 궁극적으로 왜 우리는 평창 올림픽을 유치하면서, 곧바로 "부동산 투기"를 떠올리는가? 그 안에 잘못된 프레임은 무엇이고, 강호동은 어느 지점에 서 있나? 

큰 그림을 그려보자. 

2009년 12월 이건희 회장은 업무상 배임, 조세포탈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은 후 불과 4개월만에 1인특별사면의 대상이 되었다. 죄질로 보면, 더 나쁘다. 그를 살려준 명분은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서라고 했다. 국익을 위해서는 윤리쯤은 버려도 좋다는 것이다. 

알펜시아 리조트 근처에는 강호동의 땅과는 비교도 안되는 이건희의 땅이 있다. 만약 강호동이 윤리의 기준이라면, 실제로 조세를 포탈한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고, 자신의 이해관계가 직접 걸려있는 평창동계올리픽 유치를 위해 사면을 받은 이건희 전 회장은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이건희 회장을 비난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이건희 전 회장 뒤에는 국가와 지방정부가 있다. 그리고 국가와 지방정부 뒤에는 땅값을 올려준다는 이유로 투표한 강원도 주민과, 부자를 만들어준다는 소리에 이명박을 찍어준 대한민국 국민이 있다. 김연아의 발표에 감동하고, 평창 올리픽 유치를 한 것이 자기 주머니에 돈이 들어오는 마냥 기뻐한 사람들도 있다. 

이런 큰 그림에서 보면, 강호동은 자본주의 사회에 잘 순응하고 있는 슈퍼 개임일 뿐이다. 오히려 큰 그림에는 국가와 자본이 결탁해 주민들에게 표와 돈을 빼먹는 시스템이 존재한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사람은 대부분 시스템의 노예이며,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 이상 강호동 같은 슈퍼 개미는 언제든지 또 등장할 것이다. 아니, 지금 이 순간에도 알려지지 않은 슈퍼개미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다만, 유명하지 않을 뿐이다. 

집없는 서러움, 누구에게 분노해야 하나?

최근 전세집을 구하러 다닌 적이 있다. 전세값이 천정부지로 올랐다. 소형아파트는 1억 5천만원 이하로 꿈도 못꾼다. 말이 좋아 1억 5천만원이지, 월급쟁이가 한달에 2000만원씩 모아도 8년동안 꼬박 모아야 하는 돈이다. 집주인들은 전세값을 올리는 것이 여의치 않자, 월세를 별도로 받는다. 내가 본 어떤 아파트의 주인은 마산에 산다고 했다. 그리고 1억 5천에 25만원 월세는 꼭 받아야 한다고 했다. 이름도 모르는 그 주인장 앞에서 굉장히 초라해졌다. 

순간 그 주인을 비난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잠시 후, 그러면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그 주인은 시스템에 적응한 인간일 뿐이다. 손해보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다. 투기목적으로 집을 샀을지도 모르지만, 시세차익을 노릴 수 없게 된 바에야 전세값을 높이든지, 아니면 월세라도 받아먹는 게 이익이다. 그래야 그들도 손해를 보지 않을 수 있다.

강호동을 비난하는 사람들, 마음은 좋지만 그 정성으로 시스템을 비난하면 더 좋겠다. 정의를 갈구하는 충성스러운 마음으로 강호동을 비난한다면, 그 정성은 시스템을 고치는데 쓰여져야 한다. 그리고, 진정 시스템으로 관심이 향하지 않는다면, 누군가는 대중의 이런 얄팍한 속성을 끊임없이 조작하고, 대중은 자신의 열등감으로 인해서 그들에게 이용당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