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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문화예술평론/영화평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박찬욱의 오락영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2006)

I`m a Cyborg, But That`s OK 
5.9
감독
박찬욱
출연
, 임수정, 최희진, 이용녀, 유호정
정보
로맨스/멜로 | 한국 | 105 분 | 2006-12-07
글쓴이 평점  


의미를 찾기 위해서 영화를 보던 시절. 이 영화는 의외로 의미보다는 재미에 충실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도 유쾌하고, 즐겁다.  대중들이 이 영화를 그토록 난해하게 받아들였다는 것이 오히려 조금 신기했다. 


1. 평점 4.8의 영화

 

 미리 밝혀두지만, 나는 평점이 곧 그 영화의 작품성이라고 생각한다. 대중들의 눈은 바보가 아니다. 게다가 요즘 관객들, 수준이 낮지도 않다. 요즘처럼 사람들이 영화를 많이 보는 시대가 또 있을까? 세상이 변하니 관객도 변했다. 다는 아니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기 컴퓨터에 영화를 소장하고 있다. 그것도 한두 편만 소장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컬렉션을 만들어 놓는 경우도 허다하다. 하드용량 좀 차면 눈물을 머금고 영화를 지워버리는, 나같은 사람들은 매니아의 축에도 끼지 못한다. 그 어느 시대보다 관객의 평가가 중요한 시대이다.

 

 눈치 빠른 독자는 알아차렸을 것이다. 왜 내가 지루하게 관객의 수준을 이야기하는지. 오늘의 주제는 박찬욱(감독, 존칭 생략)의 "싸이보그는 괜찮아"이다. 이 영화는 대부분 관객들로부터 외면받았다. "친절한 금자씨" 이후, 박찬욱은 상을 타먹기 위해서 작품의 대중성을 희석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싸이보그"(이하 "싸이보그")도 마찬가지였다. 이 작품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두 갈래로 갈렸다. "복잡하지만 괜찮은 영화다." 그리고, "복잡하므로 쓰레기다." 이와 같은 평가를 수치로 계산했더니 4.8이 나왔다. 네이버의 계산방식이다. 이쯤되면 박찬욱이 영화를 잘못 만들었다, 라고 생각해버리면 편하건만, 나는 아무래도 찜찜해 견딜 수가 없어서 "싸이보그"를 보고야 말았다.

 

2. 과연 재미있을까?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나는 "박찬욱, 이 xxx, 또 xxx같은 영화를 만들었고만"이라는 평가를 하기 위해서 영화를 보았다. 너무 기대치가 낮아서였을까? 꽤 재밌었다. 슬프기도 하고, 우스꽝스럽기도 하면서 머리 속에는 여러가지 단어가 떠다니고, 약간 복잡한 기분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요즘 관객들이 수준이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관객의 수준이 문화의 수준을 훌쩍 뛰어넘는 것은 아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책은 안보고 영화만 보는 인간들이 수두룩하다는 말이다. 정리하자면, 관객의 수준은 높지만, 우리나라의 전반적 문화의 수준은 아무래도 더 발전해야 할 수준이기 때문에 이 영화가 먹히지 않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는 이 영화는 나름의 메타포를 담고 있기도 하지만, 그냥 로멘틱 코메디였다. 박찬욱 은 아마 재밌는 사람일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사람을 피식피식 웃게 만드는 재주는 아무나 가지고 있지 않다. "친절한 금자씨"에서는 "올드보이"의 유머방식을 너무 많이 따라해서 식상하고 지루했던 것이, 이번 "싸이보그"에서는 박찬욱이 연구를 많이 했던 것 같다. 가령, 박일순이 '싸이코야!'라고 외치자, '싸이코가 아니라 싸이보근데."라고 연군이 혼잣말하는 장면. 박찬욱은 말장난의 영역을 자신의 영화에 포함시킴으로써 아직 자신의 유머가 죽지 않았음을 한껏 과시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보는 내내 웃기지 않았다면?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박찬욱은 관객의 기를 죽이는 습관이 있다. 아니나 다를까, 요즘 관객은 왠만한 영화를 보자마자 다음 나올 대사나 스토리를 예측할 정도의 능력은 된다. 그런데 박찬욱의 영화에서는 좀처럼 예측이 먹히지 않는다. 박찬욱의 작품은 아이디어의 연속이며, 기대를 밥먹듯이 배반한다. 그러니 관객은 기분이 나쁜 것이다.

 

"박찬욱의 머리 속은 우리를 훌쩍 뛰어넘고 있다."

 

 박찬욱이 약간의 철학적인 의미를 덧씌운 작품을 내놓아도, 관객은 지레 겁먹고 달아나버린다. 이 영화는 이해할 수가 없어, 너무 난해해. 난해하기는, 그냥 코메디 영화다, 생각하고 보면 꽤 재미있다. 여기에 상처받은 연군과 박일순이 서로를 구원해가는 과정이 살짝 덧씌워져 있다. 왜냐? 원래 인간은 불완전하니까.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간호사의 설명보다는 잘생긴 미친놈인, 박일순의 설명이 연군에게는 구원이 된다. 그러니까, 결국 인간은 다들 미친x이므로 미친x의 사랑만이 미친x를 구원할수 있다는 정도의 의미가 담겨있는 셈이다.

 

 굳이 "구원"을 끌어들이지 않아도 마치 화가같은 박찬욱의 그림솜씨를 보는 것만으로도 영화를 즐길 수 있다. 영화를 조금만 자세히 보면 알겠지만, 이 영화는 색깔 영화다! 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색감이 적절히 사용되었다. 처음 병원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거의 모든 색은 파란색이었다. 푸른 색은 살짝 무거워보일 지도 모르는 작품으로 관객을 끌어들이기 위한 박찬욱 감독의 몸짓이 아니었을까? 좀더 작품이 진지해지기 시작할때, 그러니까 박일순이 연군에게 밥을 먹이려고 시도하는 순간부터는 빨간 빛이 더해진다. 연군이 하늘을 날아 박일순에게 키스하는 그 장면에서는 붉은 태양빛이 유난히 강조되면서, 따뜻한 느낌을 준다. 키스의 따뜻함일까, 구원의 따뜻함일까?

 

 마지막 장면에서 비가 그치고 하늘 색을 보라. 지금까지 우리가 영화에서 보았던 모든 빛이 한데 망라되어 있다. 하늘은 푸르기도 하고, 보랏빛도 내뿜고, 붉으스름한 기운도 보인다. 그래, 결국 짚신도 짝이 있듯이 다들 미친x끼리 모여서 사는 거야, 라는 영화의 메시지가 색깔로 표현되어있는 듯한 느낌을 나는 받았다. 그리고 꽤 아름다웠다. 박찬욱의 얼굴이 떠올랐다. 왕년에는 미소년이라는 소리를 꽤 들었을 법한 그런 얼굴이다. 약간 살만 빼면, 지금도 꽃미남 소리를 들을 만한 얼굴이다. 이런 사람의 머리 속에서 나온 그림들이 이렇게 아름다운 것을 보면, 그도 약간의 변태기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이다.

 

3. 재미없어도 괜찮아.

 

 개인적으로 이 영화는 재미있게 보았다. "친절한 금자씨"보다는 훨씬 가볍고, "올드보이"보다는 솔직히 좀 못하다. 그러나 소재와 참신함만큼은 정말 높은 점수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나라의 감독 중에도 훌륭한 감독이 많이 있지만, 누가 망할 줄 뻔히 알만한 이런 영화를 내놓을 수 있단 말인가.("싸이보그"의 작품성이 떨어진다는 말이 아니라, 박찬욱은 이미 관객의 수준을 꿰뚫고 있을 것이라는 가정하에) 일단 용기에 박수를 보내줄 일이다.

 

 상업영화, 예술영화. 나는 이따위 구분을 좋아하지도 않지만, 굳이 선택을 하라면 상업영화를 좋아한다. 그래도, "미녀는 괴로워"보다는 "타짜"가 재미있었고, "괴물"보다는 "비열한 거리"가 더 좋았다. 정도의 차이는 있는 것이다. 어차피, 예술이란 건 가벼움과 무거움 사이의 끊임없는 줄다리기가 아닌가. 그렇게 본다면 박찬욱의 "싸이보그"는 오히려 가벼움 쪽에 더 가깝고, "올드보이"는 무거움 쪽에 더 가깝다.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연군을 미치게 만든 사회적인 제도에 대한 비판을 찾아볼 수는 없었으니까. "싸이보그" 정도의 작품을 두고, 진지하다고 말하면 안될 것 같다.

 

 또, 재미 없어도 괜찮다. 어차피 나도, 여러분도 모두 비급헐리우드 정서에 시각이 맞춰져 있는 것이 사실이니까. 박찬욱 영화가 재미없다고 말할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다. 그렇지만 박찬욱 개인에 대한 인신공격이나, 감독으로서의 의지를 꺾을만한 말은 삼가는 게 좋겠다. 언제 기분이 좋아서, 박찬욱이 우리에게 "올드보이"와 같은 명작을 선물해줄지 모르기 때문이다. 재미없더라도, 욕은 하지 말자, 이게 내 생각이다.